이 책 책표지 장난 아니다. 나도 책 읽다 뒤늦게 발견했는데, 어떤 무늬를 표지 전체에 점점이 투명하게 코팅해 놓았다. 그래서 컴퓨터 이미지로는 볼 수 없다. 그 무늬가 뭔고 하면, 아주 실감나는 '해골'이다. 책 전체와 대체로 어울리고 또 투명하게 해놓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지만 이런 무늬를 표지에 박아놓았다는 게 출판사로서도 작가로서도 대단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무섭잖아.

409호의 유방
침대
손님들
박의 책상
두번째 서랍
도축업자들
쌀과 소금
트럭

흔히 쓰이지 않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서술에 필요한 어휘가 극도로 절제돼 있다보니 이렇게 생소한 단어 하나를 발견하자 무척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 생소하지만 마음에 드는 단어를 하나 발견했다.
자닝하다 [형용사] 1 애처롭고 불쌍하여 차마 보기 어렵다. 2 [북한어]연약하고 가냘프다.
마음에 든다. 아마 북한에서 쓰이는 말이어서 점차 사장되었을 것 같은데. 자닝하다, 라니. 영어 발음 같지 않은가. 생소하기 때문에 웃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본래 뜻은 보다시피 그렇지 않다. 지금 한국엔 자닝한 사람들 천지다.
이런 종류의 소설은 처음 읽어본다. '도축업자들'과 '쌀과 소금' 그리고 '트럭', 뒤의 세 작품은 앞의 단편들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409호의 유방', '침대'를 비슷한 느낌으로 묶을 수 있다. 그리고 앞부분의 이 느낌이 소설집 전체를 강렬하게 지배한다.
무섭다. 너무 건조하여 무서울 정도다. '409호의 유방', '침대' 같은 경우엔 이야기의 흥미로움을 위해 기본이 되는 것들조차 없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들의 행위의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속해있는 공간은 단 하나 뿐이다. '손님들'도 조금 어렵다. '박의 책상', '두번째 서랍'부터는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409호의 유방'은 관리인은 대체 누군건지, 남편, 담쟁이, 그녀의 유방 까지, 바싹 마른 공포감은 느껴지는데,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소설집 전체를 짧게 표현하자면 '지독한 고립'이 어울리지 않을까. '여성'의 '지독한 고립'으로 봐도 크게 이상할 것 같지 않다. 
평론도 이상하고, 하여튼 범상치 않은 소설집인데, 이런 종류의 소설을 조금만 더 읽어나가면 맛들려서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동정 따위를 베풀다니!
그는 동정을 혐오했다. 동정은 썩은 생선 덩어리처럼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동정을 베푸는 행위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박의 책상, 134쪽)
아버지가 삼킨 한숨들은 아버지의 목 안에서 낡은 풍금이 내는듯한 소리를 냈을 것이다. 식도에서부터 파문이 번지듯 소리가 번져나가며 아버지의 몸이 지진에 휩싸인 듯 흔들렸을 것이다. (트럭, 266쪽)


침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숨 (문학과지성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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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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