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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ㅈㅎ에게 빌린 책. 책을 샅샅이 뒤져봐도 출판연도를 찾을 수 없었다. 검색하니 이렇게 떡 하니 나온다. 첫인상이 썩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다른 판본으로 읽을까 잠깐 고민했다. 정혜윤씨의 책 <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에 소개되었다. 그의 감상문을 빨리 읽고 싶었기 때문에 그냥 읽기로 했다. 세심하지 않은 번역 때문에 방해받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을 거라는 예상도 한몫 했다. 별 기대 안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서문'이라는 이름의 짧은 선언문이 나온다. 작품의 내용이 부도덕하다는 세간의 비난에 대해 작가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려고 쓴 글이다. 잡지에 연재된 글을 묶어 단행본 앞머리에 실렸다. 모두 20절인데 인상적인 몇 구절만 발췌한다.
'서문'이라는 이름의 짧은 선언문이 나온다. 작품의 내용이 부도덕하다는 세간의 비난에 대해 작가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려고 쓴 글이다. 잡지에 연재된 글을 묶어 단행본 앞머리에 실렸다. 모두 20절인데 인상적인 몇 구절만 발췌한다.
비평가란 아름다운 것에서 받은 인상을 별개의 양식이나, 새로운 소재로 바꾸어 놓은 자를 말한다.
비평의 최고인 동시에 최하의 형태는 자서전 형식이 아닐 수 없다. (...)
선도 악도 예술가에게는 예술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
모든 예술은 표면적인 동시에 상징적이다.
표면보다 밑에 이르려 하는 자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상징을 읽어내려 하는 자도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 '서문' 7~8쪽
비평의 최고인 동시에 최하의 형태는 자서전 형식이 아닐 수 없다. (...)
선도 악도 예술가에게는 예술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
모든 예술은 표면적인 동시에 상징적이다.
표면보다 밑에 이르려 하는 자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상징을 읽어내려 하는 자도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 '서문' 7~8쪽
다 읽고 나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나 자신의 반응이었다.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 요건 굉장히 흥미로운데, 요런 걸 가지고 써보면 괜찮겠다, 라는. 눈이 움직이는 대로 페이지를 넘겼고 그럭저럭 재밌게 읽었다, 그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다. 그렇게 읽어놓고서 이만큼이나 긴 독후감을 쓰다니, 참 못난 짓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한구석에서 반론이 튀어나온다. 내게 무언가를 던져주지 못한 작품에서(그 작품이 고전이라 해도) 분석과 반성거리를 애써 찾아내야 할 이유가 있나? 만약 내가 비평을 쓰기로 했다면 이 작품에 대한 비평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비평은 칭찬이든 비판이든 텍스트에 성실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니까. 그러나 나는 읽은 책이면 무조건 써야 하므로, 이 글은 성실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작품에 대한 간단한 독후감인 셈이다.(독후감인데 작품에 대한 감상은 보이지 않는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무조건 쓴다'는 원칙이 새삼 신기하다. 내가 왜 그런 원칙을 세웠을까. 독서를 기록하고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 긴 문단처럼, 나는 단지 '글을 쓰기 위해서' 읽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읽지 않으면 쓰지 못했다. 쓰지 못한다면 나는 아플 것이다.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처럼 가끔은 작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래는 공감이 가 발췌한 구절들.
지식이 풍부해지면 질수록 지식욕은 더욱더 왕성해졌다. 육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더 탐욕이 증대되는 허기진 배와 같았다. 198쪽
평범한 여자는 상상력을 자극해 주지 못합니다. 그 시대의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죠. 83쪽
평범한 여자는 상상력을 자극해 주지 못합니다. 그 시대의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죠. 83쪽
20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