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시골의사(세계문학전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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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란츠 카프카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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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한 구절들을 다시 가만히 읽었다. 내가 가닿는 곳은 프란츠 카프카, 1883년에 태어나 41년을 살았던 한 독일인의 모습이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상상의 한 조각을 붙잡아 두고 책상에 앉은 청년. 이해하기 힘든 우화에 혼란스러워 하다가도 자신의 작가적 윤리를 고백하는 듯한 대목을 발견하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짧은 단편들과 더 짧은 산문을 모아 놓았다. 꽤 어려웠다. 가장 간단한 상징에서부터 가장 압축적인 상징에 이르기까지, 태반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들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소설이 오늘날 사회의 부조리('어리석음'일 수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해석의 실타래를 발견할 수 있지만 가장 먼저 가장 굵직하게 와 닿는 주제다. <소송>에 등장하기도 하는 짧지만 핵심적인 우화 <법 앞에서>가 그렇다. 순진한 사람 하나가 법에 들어가려고 한다. 거대한 문을 지키고 선 문지기는 우락부락하다. 문지기는 그에게 충고한다. 지금은 안 되고 나중에 들어가도 좋지만 명심하시오, 갈수록 문은 커지고 문지기 역시 더욱 무서워져, 세 번째 문지기만 되어도 나는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니까. 열려 있는 법의 안을 들여다보지만 그는 문지기가 허락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한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채 문지기를 구슬려 보기도 하고 자신이 가지고 온 물건을 모두 선물한다. 문지기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받아는 두겠다만 당신이 나중에 가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자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오. 이제 목숨이 다해 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는 겨우 문지기에 묻는다, 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고 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은데 지금껏 왜 아무도 법을 찾지 않는 것이오? 문지기는 대답한다. 이 문은 오직 당신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었으니, 이제 나는 문을 닫고 가겠소.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현실의 사건이라면 1차 세계대전과 관료제 아닐까. 1차 대전과 같은 사건은 모든 개인에게 윤리적 대응을 요구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를 읽으면서 두 번의 큰 전쟁을 경험한, 더구나 전쟁의 주범이 자신의 모국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한 작가의 흔적을 발견하고 슬펐던 적이 있다. 카프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나는 이번 독서에서도 역시나 아주 주관적인 기준으로 발췌했다.)

밤에 흠뻑 잠겨. 이따금 골똘히 생각하기 위하여 고개를 떨구듯 그렇게 흠뻑 밤에 잠겨 있음. 사방에는 사람들이 잠자고 있다. 그들이 집 안에서, 탄탄한 침대 속에서, 탄탄한 지붕 아래서, 요 위에서 몸을 쭉 뻗치거나 오그린 채, 홑청 속에서, 이불 밑에서 잠자고 있다는 조그만 연극 놀음, 순진무구한 자기 기만. 사실은 그들이 언젠가 그때처럼 그리고 후일 황야에서처럼 함께 있는 것이다, 벌판의 막사, 헤아릴 수 없는 수효의 사람들, 하나의 큰 무리, 한 민족이 차가운 하늘 밑 차가운 땅 위에 내던져져 있는 것이다, 이전에 서 있었던 곳에 이마는 팔에 박고 얼굴은 땅바닥을 향한  채 조용히 숨쉬며. 그런데 네가 깨어 있구나, 파수꾼이구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찾자고 곁의 섶나뭇더미에서 꺼낸 불타고 있는 장작을 휘두르는구나. 왜 너는 깨어 있는가?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밤에>, 184쪽

책임의식, 부채감, 윤리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대.

나는 씩씩하게 걸어가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나의 속도는 이 길섶, 이 길, 이 구역의 속도이다. 나는 마땅히, 문 두드리는 모든 소리들, 식탁판을 두드리는 모든 소리들, 모든 축배의 말들, 침대 혹은 짓고 있는 건물의 뼈대 속에 누운 연인들, 어두운 골목 담벼락에 바싹 붙어 선, 그리고 홍등가의 소파에 묻혀 앉은 연인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 <집으로 가는 길>, 179쪽

낮에는 노동자로서 그리고 관료제적 시스템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집에 돌아와 밤이 되면 사회와 온갖 종류의 조직에 가두어진 개인의 절망적인 상황과 부조리를 응시한다. 낮과 밤이 이미 직접적으로 모순된다. 고달프지 않았을까.

사소한 아쉬운 점 하나는 예전에 <법 앞에서>를 다른 출판사의 카프카 전집에서 읽은 적 있는데 한 구절이 기억과 달랐다. 번역의 수준을 따질 자격은 안 되고, 자연스러운 어투의 측면에서 지난번에 읽은 전집이 더 낫다.

2011.2.20.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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