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의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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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후지와라 신야 (청어람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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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주 흥미로운 내용으로 시작한다. 어릴 적 어렴풋이 기억나는 일본의 옴진리교 사린 가스 테러 사건. 옴진리교 신도들이 도쿄 지하철 곳곳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해 15명이 죽고 수백 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저자는 옴진리교의 핵심 인물,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위험할 것 같으니 되도록 메스는 사용하지 말자는 매스컴의 주장과 이에 동조하여 자신의 원고에 자기도 모르게 검열을 가하는 필자들. 이는 옴진리교 문제가 터진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대나무 숲의 참새만큼이나 온 사회가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 몇몇 사람들의 의견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당연한 공론에 불과했다. 46쪽

저자는 1960년대에 일찌감치 인도 여행을 떠났다. 1968년 이후 몇몇 나라에서 인도여행 붐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당시 청년들은 비슷한 이유로 인도를 찾았던 것 같다. 좌절된 운동, 이어서 실존에 닥친 위기 같은. 저자 역시 비슷한 맥락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들보다 몇 년 먼저 떠났고, 10년 가까이 인도를 비롯해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이 책의 글을 단행본으로 묶기 전엔 일본의 <플레이보이>지에 연재했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한국에서 <보그>니 <지큐>에 글을 싣는 것과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일본에 돌아와 사진가이자 여행 작가로 그는 꽤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옴진리교 사건 취재기로 시작된 책은 초반부를 지나 한 청년과의 대화로 이어진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삶에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한 청년. 게재가 약속되지 않은 인터뷰를 저자는 수락한다. 일본적인 대화의 느낌이 잘 묻어 나온다. 이어 중반부부터 저자의 인도 여행기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인도 여행에서 얻은 개인적인 기억과 성찰들이다. 처음엔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옴진리교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워낙 컸고 초반부의 내용이 그만큼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감은 금방 사라졌다. 책 전체의 맥락은 일관성 있다. 저자는 옴진리교 사건에서 당시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 정신병적 징후를 느꼈다. 아사하라 쇼코의 과거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점을 확신하게 된다. 교주를 비롯한 옴진리교 초창기 멤버들이 인도를 여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과 그들의 차이점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이 인도에서 얻은 경험과 성찰이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한 반성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 연재의 목적도 옴진리교 취재기가 아니었고 시대에 대한 본인의 진단이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 자신이 아닌 정체 모를 자아를 몸에 두르고 연기하는 것은 화려해 보이는 만큼 허망함도 숨어 있어. 그런데 화려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허망함은 마음속에 축적되곤 하지. 모델들을 몇 명 알고 있는데 다들 마음속에 그런 불안의 미풍이 불고 있다는 거야. 밤에 화장을 지우고 자기 얼굴로 돌아갔을 때 미풍이 회오리를 일으키는 거지. 그리고 불면증이야. 내가 아는 모델 중 한 명은 핸드백에 늘 신경안정제가 들어 있었어.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하루를 채울 수만 있다면 그런 약도 불필요하겠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모델은 불면증에 걸린 도시 문명의 대변자니까. 그녀들은 이 뿌리도 없는 공동의 외피로 만들어진 도시 문명 그 자체야. 외관만 기능한 도시 문명의 인간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려면 허망한 연기를 계속해야 되는 법이거든." 113쪽
 
"(...) 자연이 내포하고 있는 원리에는 아직도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범이 잠재되어 있어.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환경 속에 자연과 마찬가지로 어떤 규범이 구조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이라면 머잖아 우리는 자연이라는 환경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거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연의 제어를 대신할 만한 규범은 없어. 인간이 만들어낸 2차적 환경에는 규범이 결여되어 있어. 더구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지. 도시라는 환경은 경제원칙과 쾌감원칙에 의해 사물을 판단하고, 그 판단 결과를 정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어. 그 정보의 홍수가 어른들을 부추기고 있는 거야. 그리고 어른들은 자기 아이들을 다니엘 벨이라는 사회학자가 말한 것처럼 '음란한 창녀'로 키우느라 정신이 없지. (...)" 124쪽

저자의 인도 여행기는 매우 강렬하다. 그는 인도의 밑바닥까지 들어간 여행자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고민을 온 몸으로, 갈 데까지 밀고 나간 것처럼 보인다. 옛 여행기를 다시 우려먹는 거 아냐, 라는 의심을 접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인도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보려했던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데 사실 심플하기 짝이 없다. 나의 육안으로 확실히 볼 수 있는 눈 앞의 사실과 존재의 모든 것이 내가 원한 전부였다. 눈앞을 굴러다니는 강가 모래밭의 작은 돌, 무릎 위에 떨어진 나뭇잎, 일생동안 우유만 짜고 있는 우유 가게 영감의 얼굴, 화장터에서 불타고 있는 인간의 발바닥 등 과장됨이 없는 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마지막에 나타난 허식이 없는 사실과 존재야말로 내가 믿고자 하는 모든 것이었다. 321~322쪽

실존과 죽음에 관한, 현대 사회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담고 있는  책이다. 진지하고 무겁고 우울하다. 이만큼 진짜배기인 책은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내 눈이 거의 향해본 적 없는 세계였으므로 그만큼 재밌게 읽었다. 인도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대체 인도에 가서 무엇을 보고 들을 수 있을지, 그 각오와는 별개로 말이다.

2011.2.5.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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