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이름의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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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테네시 윌리엄스 (민음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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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쓴 작품. 무척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읽고 나서 남는 것은, 짧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다. 책 뒤표지의 짧은 해설이 작품을 잘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인 감상. 블랑시 두보아, 미국 시골 출신의 순진했던 한 여자. 그녀의 집은 아름다웠고 부유했었다. 그러나 가족의 죽음, 빚더미, 그로 인한 몰락,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그녀가 여자라는 절대적인 현실. 연이어 닥치는 비극과 세상이 가하는 공격에 대해 개인마다, 개인이 속한 사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할 것이다. 블랑시 두보아가 자신에게 닥친 위기와 공격에 대처했던 방식은 슬프고 흥미롭다. 그녀는 애정결핍에 시달리듯 남자들에게 의지했다. 그녀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야망으로 가득 찬 긍정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행실을 비난할 것이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도 적응이 힘든 마음 약한 사람을 향해 다른 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여림, 신경과민, 정신 혹은 내면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해 무한한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있(으려 노력한)다.

마지막 혈육, 동생 스텔라를 찾아온 블랑시의 결말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탄 뒤 도착한 동네가 '극락'이다. 블랑시의 현실 도피적 허영심은 적나라한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 남자들은 그곳에도 가득하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의 애정을 기대한다. 한 남자의 사랑이 그녀를 구원할 수 있을까. 까닭 모르는 의심이 생긴다.

블랑시 두보아에게 낯익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하다. 그녀의 가족마저도. 그녀는 여성이었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구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란 슬프게도 자신의 성姓을 파는 행위였다. 그녀 스스로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만난 남자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동생의 남편 스탠리, 여성을 오직 성적 매력으로만 판단하고 처음 만나는 순간 성적 매력에 따라 자신이 지을 웃음을 결정하는 남자, 블랑시 두보아가 그를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 이미 블랑시의 운명은 속수무책이다. 동생 스텔라는 언니의 불행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로 슬펐다. 몸서리칠 정도로 잔인하게 슬펐다. 스탠리의 손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그 손은 모든 남자들의 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스텔라의 사치스러운 울음은 모든 여자들의 울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손과 그 울음은 모든 인간들의 것이지 않을까. 슬프다.

스탠리, 그는 분명 악한이지만 그의 아내이자 블랑시의 동생인 스텔라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녀 안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쾌락과 욕망이 그녀의 전부일까. 무언가 더 있는 것은 아닐까. 스텔라도 언니와 다를 바 없다. 그녀도 남자(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는 여자들에게 '낯선 사람'일 뿐이다)의 사랑에서 구원을 기대하는(그녀의 구원이 곧 쾌락과 욕망인 것처럼 보인다는 게 언니와 결정적으로 다르지만) 불쌍한 사람이다.

살면서 만나온 모든 사람이 '낯선 사람'이었다면. 그들의 친절에 의지해 왔다고 말하는 블랑시의 고백은 역설적이다. 실은 그 누구에게서도 친절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친절'로 보였던 남자들의 미소는 결국 그녀의 성적 매력만을 향해 있었겠지.  그녀에게 미안해진다.


블랑시  (...) 맙소사!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겠지만, 스텔라, 내 동생아, 그때 이후로 약간의 진보란 게 있었단다! 예술 같은 것들, 시나 음악 같은, 그런 새로운 광채가 그 이후로 이 세상에 들어왔거든! 어떤 사람들 안에서는 부드러운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그걸 우리는 키워야 해! 그리고 매달려서 우리의 깃발로 삼고 지켜야 해!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향한 이 어두운 행진에서..... 짐승들과 함께 뒤쳐져선 안 돼! 4장, 75쪽

블랑시  전혀 강하거나 자립적이지 못했어. 사람이 여리면, 여린 사람들은 희미한 빛을 발하거나 반짝거려야만 해. 나비 날개는 부드러운 색을 띄어야만 하고 불빛 위에 종이갓을 씌워야만 해...... 여린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거든. 여리면서도 매력적이어야 해. 그리고 나는, 나는 이제 시들어 가고 있어! 얼마나 더 눈속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83쪽

블랑시  (...) 나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아요.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그게 죄라면 달게 벌을 받겠어요! 불 켜지 말아요! 132쪽

블랑시  (의사의 팔에 바짝 붙어서)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164쪽


2011.3.5.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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