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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인류학, 특히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생겼다. 우석훈씨의 '한국 경제 대안시리즈'를 읽고 나서, 특히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개마고원)를 읽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사회를 '이해'하고 싶었다. 개인적인 맥락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눈앞의 개인이나 내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집단, 조직, 사회에 주목했으니 말이다. 그 전까지 문화인류학 개론서 한 권 읽었을 뿐이다. 졸업하면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해볼까, 막연히 생각했다. 친구들에게도 말했다. 그즈음 친구가 일조각 출판사의 인류학 입문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를 선물해 주었다(2010년, 아니 2009년 생일 선물이었던가?). 그리고 그 친구는 이 책을 올해 생일 선물로 주었다.
"경제 인류학은 경제학이라는 분과 학문과의 대화를 담당하는 인류학의 하위 분야이다."
1970년대에 경제 인류학이 자신의 존재를 학문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형식론'과 '실체론'의 논쟁이다. 두 이론에 대해선 책에 인용되어 있는 칼 폴라니의 정의를 빌어오고 싶다. "<초기 제국의 교역과 시장>에 실린 폴라니의 논문 중 <제도화된 과정으로서의 경제>라는 제목의 글은 '경제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형식적'(인 의미)으로는 합리적 의사 결정에 대한 연구를 뜻하며, '실체적'(인 의미)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는 실질적 행위들을 뜻한다." "폴라니에 따르면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시장이라는 제도 속에 매립되어embedded 있다. 하지만 다른 문화의 경제 체계에서는 경제가 다른 사회 제도들에 매립되어 있어 시장과는 다른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그러므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형식적인 경제와 실체적인 경제가 같은 영역을 가리키고 있다.
실체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상대주의적이다. 원시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 서구 사회와 아프리카 부족 사회에 고유한 경제 체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각 사회는 경제와 사회가 관계 맺는 특수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개념,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 시장, 등과 같은 미시경제학의 도구는 서구 사회에서만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형식론자들은 반론한다. 실제로 아프리카에 가보면, 그러므로 원시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개인들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합리적 행위들로 가득해 보이는 비서구 사회를 가까이서 살펴보면 한정된 자원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합리적인 개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교역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시장이 보편적으로 존재해 있다는 점도 증명하려 했다.
사실 둘 다 맞는 말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논쟁은 몇년 지나지 않아 어이없이 사라진다. 이 책의 저자들은 경제 인류학자들이 논쟁의 근본적인 지점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 지점은 바로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경제 인류학 내의 이론 진영들은 각기 다른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각각은 근본적인 인간 본성에 대한 상이한 관념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념들을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분석에 착수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는 입증될 수 없는, 기하학의 공리와 같은 것이다. 어떤 인류학자가 일련의 가정을 일단 받아들이면 그는 그 가정 자체를 전혀 입증하거나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정으로부터 온갖 종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추론해낼 수 있다."(강조는 본인)
저자들은 친절하게도 경제 인류학('사회과학'으로도 대체 가능하다)의 세 가지 가정을 모형화해서 소개한다. 첫 번째는 '이기적 모형'이다. 미시경제학이 대표적이다. 이 모형에서는 개인이 분석의 기본 단위로 채택된다. 두 번째, '사회적 모형'. 정치 경제학의 핵심적인 가정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또 자기 자신의 욕망을 따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사회가 허용한 자기 의지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로 도덕적 모형이 있다. 이 모형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세계에 대해 생각하며 믿고 있는 바에 주로 관심을 둔다." 이는 문화 경제학의 가정으로 볼 수 있다. 세 가지 가정에 대해서는 다음 예시를 보면 훨씬 쉽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데 들이는 보살핌과 관심을 보자. 이기적 이론을 적용하면, 자신의 자녀가 성장했을 때 그들에게 바라는 궁극적인 보상이 부모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회 이론가라면 아마도 부모가 자녀를 갖는 것은 사회에 필수적인 본질적 사회 단위인 가족을 이루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또 인간은 고립된 개인으로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도덕 이론은 사람들이 자녀를 돌보는 행동이 종교로부터 유래한 도덕적 의무감 때문이라거나 그들 또한 자기 부모로부터 배운 합당한 행위라는 관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1장과 2장의 내용이다. 3장부터는 세 가정에 기반을 둔 이론 및 분과 학문의 역사를 친절히 소개한다. 간단한 요약, 핵심적인 논리, 대표적인 학자의 저술과 그 내용, 역사적 개괄, 논리적.현실적 이점과 한계까지. 각 장의 미주마다 대표적인 저서와 훌륭한 민족지 목록을 아낌없이 수록해 놓았다. 6장은 '선물과 교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으로 대표되는 경제 인류학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많은 경제 인류학자들은 '선물과 교환'이라는 주제를 세 모형의 이론적 대립을 다른 방식으로 통합하도록 요구하는 이론적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들은 2장에서 미리 자신들의 이론적 태도를 밝혀 놓았다. "우리는 실제 인간의 관념과 행위를 연구하고 귀 기울임으로써 인간의 동기에 대해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경제 인류학에 있어 최고의 목표는 가공의 인간 본성에 대한 정의를 못 박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기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타적인 성자도 이기적인 괴물도 될 수 있으므로 (...) " 한마디로 딱 떨어지는 이론적 해답은 없다는 것이다. 세 가지 이론적 모형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걱정부터 했다. 도대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경제 인류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들이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큰 탈 없이 넘어서고 있는 듯하다.
본문과 주석에서 끊임없이 다른 학자의 책과 주장을 인용하고 소개한다. 경제 인류학이라는 분과 학문의 탄생을 설명하자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훌륭한 경제 인류학 서평집이다. 내용을 요약하고 장점과 단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각각의 저술이 주장하는 바를, 저술이 멈추거나 외면하는 지점에서 대신 밀고 나아간다. 그럴 때 가 닿게 되는 결론, 현실에서 드러나는 이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얼핏 보기에 매우 그럴 듯하고 설득력 있는 인류학 저술들이 그 안에 가지고 있는 논리적 문제, 가정과 전제의 결점을 알게 된다. 이는 평범한 독자들이 쉽게 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읽으면서 무척 즐거웠다. 훌륭한 경제 인류학 개론서이다. 더불어 내게는 훌륭한 인류학 입문서이기도 하다. 내가 왜 문화 인류학이라는 분과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경제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 사회과학의 주요 학문들이 근본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달라지는지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이 책은 쉽고 흥미로운 사회과학사상사史 로도 손색이 없다. 이제 내게 주요 이론의 대표적인 저작들과 뛰어난 민족지를 읽어나가는 일이 남았다. 의욕이 왕성하다!
그런데 결정적인 난관이 있음을 깨달았다. 문화 인류학의 매력에 비해 한국어 번역 단행본의 숫자가 매우 적은 것 같다, 그러므로 영어로 된 텍스트를 직접 읽는 수밖에 없다(비영어권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라도)는 곤란한 사실. 으으. 왕성한 의욕은 잠시 미뤄두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래서 요즘 카버의 <대성당>을 원서로 읽으려 노력 중이다.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 삼사십분씩 크게 소리내서. 아는 선생님이 추천한 방법인데 믿고 따라볼 생각이다.
덧. 아래는 미주와 본문에서 발견한, 특별히 관심이 갔던 저작들이다. 밖에 나가서 찾아보겠지만 번역본은 아주 드물 것 같다.
<증여론: 태고 사회에서의 교환의 형태와 이유>(마르셀 모스, 1924)
<전혀 새로운 세상>(Coontz 1992)
<인류학 이론의 등장>(Harris 1968)
<안락의자의 경제학자>(Landsburg 1993)
<인류학적 렌즈>(Peacock 1986)
<문화로서의 경제학>(Gudeman 1986)
<콜롬비아에서의 대화>
<여성, 불, 위험한 사물들>(Lakoff 1987)
<우리 삶의 지침, 메타포>(Lakoff and Johnson 1980)
2011.2.19.
"경제 인류학은 경제학이라는 분과 학문과의 대화를 담당하는 인류학의 하위 분야이다."
1970년대에 경제 인류학이 자신의 존재를 학문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형식론'과 '실체론'의 논쟁이다. 두 이론에 대해선 책에 인용되어 있는 칼 폴라니의 정의를 빌어오고 싶다. "<초기 제국의 교역과 시장>에 실린 폴라니의 논문 중 <제도화된 과정으로서의 경제>라는 제목의 글은 '경제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형식적'(인 의미)으로는 합리적 의사 결정에 대한 연구를 뜻하며, '실체적'(인 의미)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는 실질적 행위들을 뜻한다." "폴라니에 따르면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시장이라는 제도 속에 매립되어embedded 있다. 하지만 다른 문화의 경제 체계에서는 경제가 다른 사회 제도들에 매립되어 있어 시장과는 다른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그러므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형식적인 경제와 실체적인 경제가 같은 영역을 가리키고 있다.
실체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상대주의적이다. 원시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 서구 사회와 아프리카 부족 사회에 고유한 경제 체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각 사회는 경제와 사회가 관계 맺는 특수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개념,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 시장, 등과 같은 미시경제학의 도구는 서구 사회에서만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형식론자들은 반론한다. 실제로 아프리카에 가보면, 그러므로 원시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개인들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합리적 행위들로 가득해 보이는 비서구 사회를 가까이서 살펴보면 한정된 자원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합리적인 개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교역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시장이 보편적으로 존재해 있다는 점도 증명하려 했다.
사실 둘 다 맞는 말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논쟁은 몇년 지나지 않아 어이없이 사라진다. 이 책의 저자들은 경제 인류학자들이 논쟁의 근본적인 지점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 지점은 바로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경제 인류학 내의 이론 진영들은 각기 다른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각각은 근본적인 인간 본성에 대한 상이한 관념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념들을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분석에 착수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는 입증될 수 없는, 기하학의 공리와 같은 것이다. 어떤 인류학자가 일련의 가정을 일단 받아들이면 그는 그 가정 자체를 전혀 입증하거나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정으로부터 온갖 종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추론해낼 수 있다."(강조는 본인)
저자들은 친절하게도 경제 인류학('사회과학'으로도 대체 가능하다)의 세 가지 가정을 모형화해서 소개한다. 첫 번째는 '이기적 모형'이다. 미시경제학이 대표적이다. 이 모형에서는 개인이 분석의 기본 단위로 채택된다. 두 번째, '사회적 모형'. 정치 경제학의 핵심적인 가정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또 자기 자신의 욕망을 따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사회가 허용한 자기 의지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로 도덕적 모형이 있다. 이 모형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세계에 대해 생각하며 믿고 있는 바에 주로 관심을 둔다." 이는 문화 경제학의 가정으로 볼 수 있다. 세 가지 가정에 대해서는 다음 예시를 보면 훨씬 쉽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데 들이는 보살핌과 관심을 보자. 이기적 이론을 적용하면, 자신의 자녀가 성장했을 때 그들에게 바라는 궁극적인 보상이 부모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회 이론가라면 아마도 부모가 자녀를 갖는 것은 사회에 필수적인 본질적 사회 단위인 가족을 이루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또 인간은 고립된 개인으로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도덕 이론은 사람들이 자녀를 돌보는 행동이 종교로부터 유래한 도덕적 의무감 때문이라거나 그들 또한 자기 부모로부터 배운 합당한 행위라는 관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1장과 2장의 내용이다. 3장부터는 세 가정에 기반을 둔 이론 및 분과 학문의 역사를 친절히 소개한다. 간단한 요약, 핵심적인 논리, 대표적인 학자의 저술과 그 내용, 역사적 개괄, 논리적.현실적 이점과 한계까지. 각 장의 미주마다 대표적인 저서와 훌륭한 민족지 목록을 아낌없이 수록해 놓았다. 6장은 '선물과 교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으로 대표되는 경제 인류학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많은 경제 인류학자들은 '선물과 교환'이라는 주제를 세 모형의 이론적 대립을 다른 방식으로 통합하도록 요구하는 이론적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들은 2장에서 미리 자신들의 이론적 태도를 밝혀 놓았다. "우리는 실제 인간의 관념과 행위를 연구하고 귀 기울임으로써 인간의 동기에 대해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경제 인류학에 있어 최고의 목표는 가공의 인간 본성에 대한 정의를 못 박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기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타적인 성자도 이기적인 괴물도 될 수 있으므로 (...) " 한마디로 딱 떨어지는 이론적 해답은 없다는 것이다. 세 가지 이론적 모형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걱정부터 했다. 도대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경제 인류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들이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큰 탈 없이 넘어서고 있는 듯하다.
본문과 주석에서 끊임없이 다른 학자의 책과 주장을 인용하고 소개한다. 경제 인류학이라는 분과 학문의 탄생을 설명하자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훌륭한 경제 인류학 서평집이다. 내용을 요약하고 장점과 단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각각의 저술이 주장하는 바를, 저술이 멈추거나 외면하는 지점에서 대신 밀고 나아간다. 그럴 때 가 닿게 되는 결론, 현실에서 드러나는 이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얼핏 보기에 매우 그럴 듯하고 설득력 있는 인류학 저술들이 그 안에 가지고 있는 논리적 문제, 가정과 전제의 결점을 알게 된다. 이는 평범한 독자들이 쉽게 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읽으면서 무척 즐거웠다. 훌륭한 경제 인류학 개론서이다. 더불어 내게는 훌륭한 인류학 입문서이기도 하다. 내가 왜 문화 인류학이라는 분과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경제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 사회과학의 주요 학문들이 근본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달라지는지를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이 책은 쉽고 흥미로운 사회과학사상사史 로도 손색이 없다. 이제 내게 주요 이론의 대표적인 저작들과 뛰어난 민족지를 읽어나가는 일이 남았다. 의욕이 왕성하다!
그런데 결정적인 난관이 있음을 깨달았다. 문화 인류학의 매력에 비해 한국어 번역 단행본의 숫자가 매우 적은 것 같다, 그러므로 영어로 된 텍스트를 직접 읽는 수밖에 없다(비영어권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라도)는 곤란한 사실. 으으. 왕성한 의욕은 잠시 미뤄두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래서 요즘 카버의 <대성당>을 원서로 읽으려 노력 중이다.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 삼사십분씩 크게 소리내서. 아는 선생님이 추천한 방법인데 믿고 따라볼 생각이다.
덧. 아래는 미주와 본문에서 발견한, 특별히 관심이 갔던 저작들이다. 밖에 나가서 찾아보겠지만 번역본은 아주 드물 것 같다.
<증여론: 태고 사회에서의 교환의 형태와 이유>(마르셀 모스, 1924)
<전혀 새로운 세상>(Coontz 1992)
<인류학 이론의 등장>(Harris 1968)
<안락의자의 경제학자>(Landsburg 1993)
<인류학적 렌즈>(Peacock 1986)
<문화로서의 경제학>(Gudeman 1986)
<콜롬비아에서의 대화>
<여성, 불, 위험한 사물들>(Lakoff 1987)
<우리 삶의 지침, 메타포>(Lakoff and Johnson 1980)
201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