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세상은영화가될것이다정성일정우열의영화편애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영화 > 영화이야기
지은이 정성일 (바다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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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쪽을 접어 놓았었다. 많은 구절에서 황홀했다. 이 책에 언급된 수십 편의 영화 중 내가 본 영화는 세 편도 안 된다. 그런데도 무아지경으로 책을 읽었다. 아까워서,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한번에 많이 읽지 못했다. 백쪽 씩 나눠 읽어야 했다.
다시 책을 펴들어 접어놓은 쪽을 찬찬히 읽었다. 평소대로 발췌할 준비를 마쳤으나 선뜻 옮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옮겨 놓은 구절은 겨우 둘.


...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혼자 중얼거리면서 걸어가는 그 기나긴 독백의 시간. 지나가 버린 흥분.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감흥.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흔들림.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말, 홀로 있다는 것. 혼자서 버틴다는 것. 그때 괴로운 것은 내가 고독해서가 아니라 지금 막 보고 나온 그 영화가, 그 감흥이, 그 흥분이 고독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겨진 임무는 분명하다. 그 감흥을, 그 흥분을, 그 흔들림을 거기서 끝나게 하면 안 된다. 34쪽

모든 예술 장르는 그 자체로 배워야 한다. 배움 없이 예술을 감각적으로, 즉흥적으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결국 규칙 안에서 벌이는 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규칙을 알지 못하면 놀이를 할 수 없다. 370~371쪽

그의 글은 어렵고 단호하고 감동적이다. 뭐랄까, 문장과 문장으로 이어지면 글이 어려운데 단어 하나하나는 그리 어렵지 않다. 복잡한 개념어를 사용하는 횟수가 매우 드문 것 같다. 그래서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그가 하는 말을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나보다. 알게 모르게 그의 문체를 따라가는 느낌마저 든다.
이 책에서 내가 배운 것은 영화가 아니다. 차이밍량, 장률, 고다르, 장 콕토, 야스지로, 하여간 수많은 거장들의 영화와 그 영화들에 대한 비평은 영화를 즐겨 보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용하고 또 흥미진진할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것은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과 '태도' 그리고 함께 영화를 보는 이들을 향한 '우정'이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최근 '내 친구들'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정성일씨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내 벗들, 내 동무들, 내 동료들.
영화는 이렇게 훌륭한 연인들을 거느리고 있었구나. 미처 몰랐다. 정말로, 이 책의 감상을 단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황홀함'.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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