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2:약속된장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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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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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1편은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 사건, 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인터뷰집이다. 시끌벅적한 언론의 조명은 사태를 편협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 무색무취의 가스를 맡은 뒤 장애를 얻고, 죽고,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거나 업무에 지장이 생긴 보통 사람들의 심정과 상황을 직접 듣는다. 탐욕스러운 하나의 시각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이 책은 1편이 나온지 3년 뒤에 나왔다. 저자는 일본 사회가 옴진리교를 두고 상식적이고 간단명쾌한 근거로 그들의 범죄 동기를 쉽사리 분석해내는 데에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곁에 책이 없어 확인하기 힘들지만) 대여섯 사람의 인터뷰가 실렸다.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옴진리교 신도로 사는 사람도 포함돼 있다. 대부분은 사건 전후로 교단을 탈퇴했다. 저자 본인이 1편과 차이점으로 밝히듯 이번엔 듣기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묻고,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1편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자세히 답변한다. 유명 작가라는 명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라는 사람이 가진 힘, 그 자리에 임한 그의 태도 덕분일 것 같다.

하루키  소설가로서 드는 생각입니다만, 부정적인 곳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는 없잖습니까. 이야기의 진정한 그림자나 깊이를 자아내는 것은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총체적인 세계와 어디에서 조정해 가느냐, 어디에서 선을 긋느냐, 그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균형감각이 반드시 필요하죠. 287쪽

하루키  (...) 그래서 결국 생각해냈는데, 우리는 세계의 구조를 지극히 본능적으로, 차이니즈 박스 같은 것으로 파악하는 듯합니다. 상자 안에 상자가 있고, 그 상자 안에 또 다른 상자가 있고...... 하는 식으로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한 겹 바깥에는, 혹은 한 겹 안쪽에는 또 하나의 다른 상자가 있을 거라고 잠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이해가 우리 세계에 형체를 부여하고 깊이를 주는 겁니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배음(하모닉스) 같은 것을 부여해주죠. 그런데 옴진리교 사람들은 입으로는 '다른 세계'를 희구하지만, 실제 그들의 세계의 성립 방식은 기묘하게 단일하고 평면적입니다. 어느 부분에서 전개가 멈춰버렸어요. 상자 하나의 분량밖에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95쪽

하야오  (...) 때문에 진정한 조직은 악을 자기 안에 끌어안아야 해요, 조직 내부에. 그건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도 집안 내부에 어느 정도 악을 품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그러지 않으면 조직의 안녕을 위해 바깥에 커다란 악을 만들어버리게 되니까요. 히틀러가 한 짓이 바로 그런 것이죠. 307쪽

하루키  (...) 악이란 인간이라는 시스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독립된 것이 아니며, 다른 것과 교환하거나 혹은 그것만 따로 무너뜨릴 수도 없죠. 또한 그것은 경우에 따라 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쪽에서 빛을 비추면 그 그림자가 악이 되고, 저쪽에서 빛을 비추면 그 그림자가 선이 되는 것처럼. 그러면 여러 가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311쪽

역시나 매우 빨리 읽혔으며 주제 역시 흥미로웠다. 책 말미에 두 편의 대담이 실렸다. (성을 까먹은) 하야오, 라는 심리치료사와의 대담인데 1편과 2편이 나온 직후에 각각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2편에 대한 대담에서 눈이 번쩍 번쩍 떠졌다. '악'이라는 문제. 부정적인 무엇. 어두운 무엇. 발췌문 첫번째 대목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바였다. 다만 그 점을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했었다. 나 자신이 그런 이야기에 특히나 끌리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사실 소설이란 아니 이야기들이란, 적든 많든 기본적으로 삶에 타격을 가하는 사건이 등장하는 것 같다. 뭐라 똑 부러지게 말하긴 힘들지만. 나머지 대목들도 모두 다 아주 흥미로운 해석의 실마리들이다.

결국 생각해보면, 세상의 시스템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사람, 어딘가 잘 안 맞는 사람, 혹은 그로부터 배척당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옴진리교에 들어간 겁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좋습니다. 그들과는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세상에서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그런 사람들에게 훨씬 더 친근감을 느낍니다. (...) 79쪽

생각해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한국이 더 심할 거다. 멀쩡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멀쩡하니까 거리를 돌아다니는 거고, 그마저 멀쩡한 사람들은 얼마 안 되고 멀쩡한 '척' 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도시의 온갖 건물들 구석구석에는 지금 이곳을 자신의 세계로 받아 들이지 않는/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 아직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 하고 있거나.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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