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편지하지않다(제14회문학동네작가상수상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장은진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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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소설이지만, 실감의 무게는 가벼운 편이었다. '작가 후기'와 '수상자 인터뷰'를 통해 집필 당시 작가의 일상을 듣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난 삼사 년 동안 거의 소설만 쓰며 살았다고 한다. 1년 동안 30만원을 가지고 살았던 적도 있단다. 눈 먼 개와 함께. 이 작품에서 도드라지게 무게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주인공의 '외로움'이었다. 목숨이 걸려 있을 정도의 외로움. 내면의 감정과 외부의 상황을 통틀어 부르는 단어. 바로 이걸 묘사하고 표현하는 대목만큼은 지어내지 않은 것 같았다. 나도 아니까. 주인공의 그 외로움을 안다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외로움, 스스로 의도하지 않은 완벽한 고립과 단절의 상태에서 오는 심리적 상태를.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하루가 존재했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내게 편지는 일기 같은 것이다. 다만 그 하루가 내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쳐진다는 것뿐이다. 일기는 독점되는 것이지만 편지는 공유되는 것이다. 일기는 홀로 보관하는 것이지만 편지는 둘 이상이 보관하는 것이다. 20~21쪽

'소녀 같다'는 인상이 강한 작가였고 그런 작품이었다.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는, 또 다른 한국적 여성 작가의 등장'이라는 표현이 문득 떠올랐다. 참 실례되는 말일 텐데. 비평일까, 개인적인 아쉬움일까. 소설 쓰는 기술을 갈고 닦는 일도 물론 무척 중요하겠다. 어쨌든 '잘' 써야 하니까.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 문학에, 특히 여성 작가들의 문학에 부족한 것은 현실의 무게감 인 것 같다. 이건 심지어 비평도 아쉬움도 아닌 개인적인 취향에서 비롯된 생떼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르포르타주도 문학이니까. 비문학이 아니라 문학에 포함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들 조금 더 '몸'으로 쓰시면 좋겠다. 방 안에서 머리로만 쓰지 말고, 신문이나 티브이로 보지 말고. 자기 눈으로 자기 몸으로 길바닥에서 더 고되게 보고 듣고 써주셨으면 좋겠다, 는 독자의 소망("정 아쉬우면 니가 쓰든가!").

(...) 하늘이 맑게 갠 날에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 166쪽
99가 커피 잔을 다 비우고 쓰디쓴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쓴 표정을 짓는 사람은 왠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99가 거짓 없는 말투로 이어 말했다. 186쪽

2011.7.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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