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날그녀들이임경선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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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임경선 (학고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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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산문집 <冊>에서 읽은 대목이 생각난다. 본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에는 'OOO 소설집' 혹은 'OOO 단편소설'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대 초반 들어 단편 소설을 모아 놓았으면서 'OOO 소설' 같은 식으로 이름붙인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자가 업계 관계자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단편소설집은 장편소설에 비해 판매량이 적으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이름을 바꿔 붙인 거라고.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하고 조금 헷갈리게 되었다. 지금도 어떤 출판사는 소설집이라 하고 어떤 출판사는 그냥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낸다.
이 책은 9편의 짧은 단편집이다. 엄밀히 말하면 '소설집'이다. 그보다 나는 왜 '연애'라고 드러내 놓았는지 궁금하다. 추리소설, 판타지소설, 문학 안에도 장르는 분명히 있고 그 장르만의 규칙과 문법이 있다. 그런데 '연애소설'이라는 장르가 있을 수 있나? 그렇다면 그 장르만의 규칙과 문법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그녀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을 즐겨 듣다 처음 알게 되었고 얼마 전까지 한겨레신문 <esc>면에 연재한 상담 칼럼도 무척 재밌게 읽었다. 블로그에 칼럼 일부를 발췌해놓기도 했었다. 이 책도 한겨레 책면에서 소개 기사를 읽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9편 모두 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녀들은 회사에 다니거나 전문직 종사자다. 모아 놓은 돈은 많지 않지만 당장 살아가기엔 무리가 없다. 그 나이 여성들의 삶은 내게 아직 '누나'들의 일이라 본 적도 들은 적도 별로 없었다. 이제 곧 나와 내 친구들의 현실이 되겠지만. 어떤 주인공의 말마따나 소설 속 '어른'들의 세계에 겁도 났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갔던 작품은 '남자의 순정', '달팽이 껍질 속 사랑', '친구 이상 애인 미만' 모두 세 작품이다. 20대 초반의 대학 시절을 다루거나, 집과 근처 동네를 사랑하는 등장인물이 등장하거나, 남자와 여자의 우정과 연애 사이를 다루고 있어서 그렇다. 마지막의 '해후'라는 단편이 재밌고 흥미로웠다. 주인공들이 가장 풍성하게 그려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마음에 더 와 닿았다.
첫 소설이라 그런지, 그녀의 칼럼만큼 매력적이진 않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과 끝까지 자유로운 여자로 남는 것, 두 가지 희망을 품고 있다는 말에 그녀에게 호의를 갖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앞으로도 오래, 건필하시길 바란다.

덧. 문득 목수정씨가 생각났다. 두 사람은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냈고 칼럼도 꽤 쓰셨다. 두 사람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음험한 호기심이 스물스물.

오늘은 그가 좀 일찍 떠나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그가 떠나고 난 빈자리가 좋을 때도 없지 않았다. 설령 텅 빈 느낌이 나를 지배해도 그것은 모종의 평화로운 안정감을 주었다. 96쪽

그는 여자보다는 일을 더 좋아하는 남자였다. 일에 빠져 있을 때면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 파괴적인 것들을 잊는 듯했다. 자기 연민도, 타인에 대한 미움도, 쓸쓸함도.
그런 그의 모습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려는,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를 봤다. 그런 남자가 자신을 잊고 잠시나마 여자에게, 아니 나에게 에너지를 쏟았다. 그때의 느낌을 경험해 본 여자라면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지 알 거다. 159쪽

2011.8.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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