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시대의사랑1(세계문학전집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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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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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틀림없이.

소설은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박사는 친구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는 오래 전 숨겨둔 연인에게 젊음이 사그라지고 죽음과 같은 늙음이 시작되는 나이인 60살에 죽을 거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박사는 남미의 오래 된 어느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이다. 그 도시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파리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그는 당시 도시에 만연해 있던 콜레라에 대처하는 데 업적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아내 페르미노 다사, 그녀는 이 작품에서 가장 생생한 주인공이다. 턱없을 정도의 자존심이 평생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했다. 그 자존심에 반해 결혼했던 우르비노 박사였지만 두 사람은 부유함과 명성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서로 '사랑'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 왔다. 

그(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녀가 고르고 싶은 남자는 아니었다. 주워 온 아이처럼 보이게 하는 안경알, 성직자 같은 옷차림새, 그의 신비스러운 재주는 그녀에게 뿌리치기 힘든 호기심을 자아냈지만, 호기심이 사랑의 수많은 가면 중의 하나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1권, 119쪽
 

그리고 플로렌티노 아리사. 그는 10대 후반의 나이에 그보다 더 어린 페르미노 다사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강렬한 짝사랑의 시간을 보낸 뒤 그녀는 그를 순식간에 완전히 차버린다. 그 뒤로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수십 명의 여성들과 나눈 수십 년 동안의 사랑은 짝사랑의 고통을 달래려는 궁색한 노력이었다. 그가 만났던 과부들과 여성들에 관한 짧은 사랑의 일화들은 그 자체로도 충만하고 기이한 이야기다. 실제로 남미에선 그 중 하나의 일화만으로 찍은 영화들도 있다고 한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녀를 통해 알지는 못했으나 이미 수없이 경험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그 어떤 여자도 배신하지 않은 채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으며, 각각에게 똑같은 슬픔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두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자, 그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싸구려 호텔보다 더 많은 방이 있어." 2권, 195쪽
 
작가의 최근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여성 편력 가운데 가장 최후의 여성이었던 아메리카 비쿠냐의 나이는 14살이다. 어쩌면 그녀야말로 그를 가장 사랑했던 여인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읽기 얼마 전에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었다. 그 작품은 나를 곤욕스럽게 했었다. 롤리타에 대한 사랑, 욕정, 행복이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어쩌면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아메리카 비쿠냐에 대해 느꼈던 사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90살 먹은 노인이 10대의 소녀에게 느꼈던 아름다움과 롤리타에 대한 사랑이 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이나 남미에서나 노년에 접어든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부끄러운 일인가 보다. 작품의 마지막 장은 한국 영화 <죽어도 좋아>를 생각나게 한다. 배 위에서 페르미노 다사와 플로렌티노 아리사 사이에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대화는 감동적이다. 남아메리카의 사랑이라, 무척 궁금해졌다.

2011.7.


그러나 남편 없이 외로이 미사를 보면서, 젊은 신부의 수많은 꿈 중의 하나에 불과한 안정을 대가로 자신의 성 뿐만 아니라 개성까지도 포기한 시절 이후, 다시금 자신이 자유 의지의 주인이 되었다는 의식을 갖곤 했다. 오직 그 여자들만이 자신이 미친 듯이 사랑했고 또한 아마도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 하지만 죽는 날까지 젖을 주고 더러워진 기저귀를 갈아주며, 아침마다 현실과 직면할 때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어머니의 술책을 사용하여 기분좋게 해주어야 했던 남자가 얼마나 지겨운 존재였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가 자신의 사주를 받아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을 본 여자들은 그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것이 삶이었다. 사랑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별개의 것, 즉 또 다른 삶이었다. 
반면에 기운을 돋워주는 고독이라는 나태함을 즐기던 과부들은 육체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배가 고플 때만 밥을 먹고, 거짓말하지 않고 사랑하며, 꼴사나운 공식적인 사랑을 피하기 위해 자는 척하지 않고 정말로 잠을 자고, 마침내 그들의 육체가 자기만의 꿈을 실컷 꾸고 홀로 깨어날 때까지 그 누구와도 침대 시트의 반을 차지하려고 다투거나 방안 공기의 반을 숨시려고 옥신각신하거나 밤의 반을 놓고 싸우는 일 없이, 온 침대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의 주인이 자신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2권, 74~75쪽

그녀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정말 못생겼네요. 여자 것보다 더 못생겼어요." 그는 그 말에 동의했고, 추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가르쳐주면서 말했다. "이 녀석은 장님과 같소. 우리는 이놈을 위해 평생을 일하면서 보내거든. 이놈 때문에 모든 걸 희생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끝내버리고 마오." 1권, 277쪽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 "우리 남자들은 편견의 가련한 노예야. 반면에 한 여자가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하기로 결심하면, 못 오를 울타리가 없고 아무리 강한 요새도 함락되며, 그 어떤 도덕심도 뿌리부터 무시되기 마련이지. 하느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소." 2권, 298쪽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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