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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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열린책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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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중년이 된 주인공의 독백, 2부는 주인공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1부를 읽다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 없어 자칫 독서를 멈출 수도 있다. 조금만 참으면, 2부 들어 도스또예프스끼 특유의 광기로 가득 찬 인물을 만나게 된다. 도스또예프스끼 소설을 읽을 때마다 발췌문으 분량이 무척 많았는데 이번 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거기다 견장정으로 되어 튼튼하고 겉싸개를 벗긴 파란 표지의 색과 촉감이 좋아서 자꾸 쓰다듬곤 했다. 

그렇다. 모든 문제는 내가 악하지도 않고 못된 인간이 될 수도 없으며, 내가 자주 심지어는 가장 화가 났을 때조차도, 단지 참새들만을 쓸데없이 놀라게 해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수치심과 함께 자각한다는 데 있으며, 여기에 바로 가장 추악한 것이 담겨 있다. 11쪽

그런데, 점잖은 사람이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얘기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답: 자신에 관해서. 
자, 그럼 나도 내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14쪽

그러나 바로 이러한 차갑고 끔찍스러운 절반의 절망과 절반의 믿음 안에, 슬픔 때문에 의식적으로 자신을 40년 동안 지하실에 생매장시키는 것에, 이렇게 강하게 창조되었지만 부분적으로 의심스러운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절망 속에, 내면을 향한 만족되지 못한 갈망의 이 모든 독기 안에, 영원히 결정된 선택과 곧 다시 이것에 찾아 드는 후회가 반복되는 흔들림의 열병 속에, 내가 말했던 그 이상한 쾌락의 진수가 있다. 22쪽

그러나 나는 인간이 진정한 고통을, 즉, 파괴와 혼돈을 결코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의식의 유일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의식은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이라고 처음에 내가 공언하였지만 나는 인간이 그것을 사랑하고 있으며 어떤 만족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56~57쪽

그러나 종이 위에서 그것은 왠지 더욱 엄숙한 것으로 변한다. 거기엔 뭔가 당당한 것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판단할 수 잇을 것이다. 내 문체는 더 향상될 것이다. 그 외에도 아마도 나는 실제로 적어 내려가는것으로부터 어떤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64~65쪽

그런데 갑자기 그때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책에서 읽은 대로 상상하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몽상들 속에서 미리 꾸며 놓은 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속에 그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그 이상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상한 상황이란 내가 모욕하고 짓밟았던 리자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이해했다는 것이다. 내가 말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그녀는, 여자가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다면 항상 무엇보다도 먼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즉, 나 또한 불행하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187쪽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는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정도에 따라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토록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참된 <실제의 삶>에 대하여 사람들이 상기시킬 때, 때때로 참된 <실제의 삶>에 어떤 혐오감 같은 것을 느끼며 그래서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196쪽

과잉한 자의식. 과잉하다 못해 흘러넘친다. 그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눈이 있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그가 지하실로 숨어들어간 이유도 그 눈들 때문이었는데). 불행한 사내.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드미뜨리나 이반 같은 사내들과 다르지 않다. 책이 작아 보인다. 격정적으로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하고, 열에 들떠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혼잣말 하는 인간들이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우울하고 어두운, '검은색으로 타오르는 불꽃'같은 느낌이었다. 실은 내 마음속에도 숨겨져 있는 그 불꽃.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다. 내 안엔 분명히 있고 시시때때로 느낀다. 불쑥 튀어 나오려 하는 것을 겨우 참고 숨기고 위장하고. 어두운 곳에서 혼자 달랜다. 자위하듯. 이런 소설을 읽는 행위야말로 가장 건전한 방식의 자위일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소설이 대부분 그런 느낌이다. 매번 반하고 만다. 다음 번엔 아마도 <악령>을 읽어볼 생각이다. 도스또예프스끼만큼은 가능한 전작을 해봐야겠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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