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책이다. 헌책방 이상북에서 구했다. 나온 지 10년 정도 되었다. 아마 헌책방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책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데서 오는 설렘.
일단 소설이다. 허구의 이야기라는 틀을 통해서 인류의 짝짓기, 즉 성행위를 인류학의 방법으로 탐구한다. 인류학 교수였던 주인공 마틴은 죽고 난 뒤 사후 세계에 머문다. 새로운 삶, 즉 환생에 앞서 선택을 도와주는 '이행'의 세계다. 그곳에서 그는 이행 담당자(외계 생명체)와 협상을 하게 되고, 지구에서 생존했던 모든 생명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생명기록부'를 열람하며 연구를 시작한다. 부친과 모친, 전 아내들의 장인과 장모, 코스타리카와 인도에서 만난 적 있는 현지인의 삶을 1권에서 다루고 2권은 침팬지와 바퀴벌레,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엿보는 내용이다. 연구가 끝날 때마다 결과를 이행 담당자에게 보고하고 토론한다. 주인공 마틴은 저자의 분신이기도 한데, 저자 역시 인류학 교수이고 자신의 결혼과 이혼을 계기로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쉽게 쓰인 인류학 민족지이기도 하다.
1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성행위를 도덕적으로 억업하던 사회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이혼은 해선 안 될 일이었고, 섹스는 번식을 위한 것으로만 가치를 인정받았다. 자신은 부모를 모시고 살았지만 자식은 자신과 함께 살지 않았다. 1950~60년대 미국 사회와 1980~90년대 한국 사회가 그런 변화의 시기, '과도기'에 해당될 것이다. 변화의 가장 중요한 결과를 꼽자면 아마도 노인 독신 세대의 증가이다. "가장 중요한 결속, 즉 노년의 안전이라는 게 가족에 의해 버려지고 있었던 겁니다. 오랫동안 그것은 훌륭한 관습이었으나 이제 그 시대는 거의 끝난 것 같아요. "(1권, 167쪽) 이는 끔찍한 풍경을 낳았다. 노인들이 내내 티브이를 보거나 침대에 누워 잠을 잘 뿐인 요양원의 등장과 폭발적인 증가. 나 역시 부모와 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대안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다.
1권 보다는 2권이 더 흥미로웠다. 특히 침팬지의 삶에 대한 부분. "(...) 제약이 없는 영장류인 침팬지는 오랜 옛날부터 상당히 자유롭게 짝짓기 상대방을 선택했다는 거야. 일시적으로 지속되는 관계는 있지만 대체로 암컷은 여러 수컷에게 폭넓게 섹스를 제공하지. 그래서 사실상 누구나 섹스를 누릴 수 있고 질투심 같은 것도 없어. 장기적인 짝짓기 관계도 없을뿐더러 아비도 자기 새끼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네. 마틴은 그것이 인간을 포함하여 영장류의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의 짝짓기 방식은 인류학자들이 문화화라고 부르는 세뇌의 결과라는 거지.(...)"(2권, 75쪽) 마틴은 인간의 삶보다 침팬지의 삶 쪽에 기울었다. "문화화라고 부르는 세뇌"를 당하지 않은 침팬지가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만약 내 고모들이 침팬지였다면 그렇게 고독하게 살 필요도 없었을 테고 다른 여자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겠죠. 그들은 남자들과 교접해서 임신하고 아이도 낳았을 거예요. 물론 그렇다면 그들은 왼손에 반지를 끼지도 못했을 테고, 누가 집에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잠자리를 제공하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여느 여성들처럼 어머니로서 살아갈 수는 있었겠죠. (...) 따라서 단기적인 접촉만으로도 잘 살아가는 동물을 보았을 때 나는 인간의 짝짓기 방식에서 잘못된 점이 바로 짝을 이루는 기간과 정도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침팬지들은 특정한 개체에게 깊은 감정을 품거나 하는 일로 고민하지 않았어요."(2권, 64~65쪽)
"문화화라는 세뇌"에 대해 보통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게 세뇌라니. 그렇지만 인류학자 마틴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우리는 현재까지 계속된 관습을 비논리적으로 정당화하며 수긍한다. 그게 바로 세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 인간은 문화적 합리화라는 묘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 아셔야 합니다. 인간이 하는 일 중에는 스스로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도 많아요. 우리 인류학자들은 사람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관습적 행동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말이 '언제나 그래왔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 기존의 행동양식이면 무엇이든 문화적으로 정당화하는 거죠."(2권, 104~105쪽)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가르칠 때 흔히 그 이유를 '선모충병'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틴은 반문한다. 돼지고기를 완전히 익혀 먹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그런 가르침의 진정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런 세뇌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명은 사후적인 정당화"에 불과하다는 결론과 함께.
그는 살아있을 때와 달리 성행위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뀐다. "당시 나는 성행위가 쾌락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성행위가 번식을 위한 보편적인 수단이라고 여기며,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남성이 가족과 자식을 돌보도록 묶어두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2권, 331쪽) 과연 오늘날의 성행위가 그런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을까? 성행위의 두 가지 기능은 서구화된 대부분의 사회에서 힘을 잃고 있거나 이미 잃었다. 낮은 출산율로 인구가 감소하고, 이혼율은 50%에 가깝다. 이를 두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어리석다.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적 체제 전부가 이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달라진 조건에 맞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워낙 어마어마한 문제라 제대로 대처하려면 거의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인류의 짝짓기와 가족제도를 비판한 다음 마틴은 자신의 삶을 엿본다. 그러고 나서 최종적으로 현대 사회의 폐해를 지적한다. 이 대목은 인류학 교수 마틴과 아서 니호프가 만년에 내린 최종 결론일 것이다. "모두들 자신의 심리를 치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만나지만, 실제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헤어집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는 거죠. 프로이트가 한 세기를 지배한 겁니다. 사회적 현실의 짐을 떠맡은 것은 다른 사람들, 주로 마르크스주의자와 동양인들이었습니다. (...) 알기 쉽게 말한다면, 사회적 현실을 부정하고 개인적 실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개인주의)가 바로 가족을 해체시키고, 이혼을 증가시키고, 개인들이 함께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독신 세대를 등장하게 한 원인이라는 거죠.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카운슬러, 변호사 등의 사람들은 단지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2권, 325쪽)
소설이고, 쉽게 쓰인 만큼, 아쉽다는 느낌도 남았다. 좀 더 학문적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경제인류학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서 불타올랐던 열의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현장감 넘치는 민족지든 이론서든 말이다. 아무래도 가이드가 필요하다. 일단 번역된 인류학 서적에 관한 서평모음이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시간이 나는 대로 찾아봐야겠다. 함께 공부할 도반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일단 소설이다. 허구의 이야기라는 틀을 통해서 인류의 짝짓기, 즉 성행위를 인류학의 방법으로 탐구한다. 인류학 교수였던 주인공 마틴은 죽고 난 뒤 사후 세계에 머문다. 새로운 삶, 즉 환생에 앞서 선택을 도와주는 '이행'의 세계다. 그곳에서 그는 이행 담당자(외계 생명체)와 협상을 하게 되고, 지구에서 생존했던 모든 생명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생명기록부'를 열람하며 연구를 시작한다. 부친과 모친, 전 아내들의 장인과 장모, 코스타리카와 인도에서 만난 적 있는 현지인의 삶을 1권에서 다루고 2권은 침팬지와 바퀴벌레,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엿보는 내용이다. 연구가 끝날 때마다 결과를 이행 담당자에게 보고하고 토론한다. 주인공 마틴은 저자의 분신이기도 한데, 저자 역시 인류학 교수이고 자신의 결혼과 이혼을 계기로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쉽게 쓰인 인류학 민족지이기도 하다.
1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성행위를 도덕적으로 억업하던 사회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이혼은 해선 안 될 일이었고, 섹스는 번식을 위한 것으로만 가치를 인정받았다. 자신은 부모를 모시고 살았지만 자식은 자신과 함께 살지 않았다. 1950~60년대 미국 사회와 1980~90년대 한국 사회가 그런 변화의 시기, '과도기'에 해당될 것이다. 변화의 가장 중요한 결과를 꼽자면 아마도 노인 독신 세대의 증가이다. "가장 중요한 결속, 즉 노년의 안전이라는 게 가족에 의해 버려지고 있었던 겁니다. 오랫동안 그것은 훌륭한 관습이었으나 이제 그 시대는 거의 끝난 것 같아요. "(1권, 167쪽) 이는 끔찍한 풍경을 낳았다. 노인들이 내내 티브이를 보거나 침대에 누워 잠을 잘 뿐인 요양원의 등장과 폭발적인 증가. 나 역시 부모와 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대안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다.
1권 보다는 2권이 더 흥미로웠다. 특히 침팬지의 삶에 대한 부분. "(...) 제약이 없는 영장류인 침팬지는 오랜 옛날부터 상당히 자유롭게 짝짓기 상대방을 선택했다는 거야. 일시적으로 지속되는 관계는 있지만 대체로 암컷은 여러 수컷에게 폭넓게 섹스를 제공하지. 그래서 사실상 누구나 섹스를 누릴 수 있고 질투심 같은 것도 없어. 장기적인 짝짓기 관계도 없을뿐더러 아비도 자기 새끼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네. 마틴은 그것이 인간을 포함하여 영장류의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의 짝짓기 방식은 인류학자들이 문화화라고 부르는 세뇌의 결과라는 거지.(...)"(2권, 75쪽) 마틴은 인간의 삶보다 침팬지의 삶 쪽에 기울었다. "문화화라고 부르는 세뇌"를 당하지 않은 침팬지가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만약 내 고모들이 침팬지였다면 그렇게 고독하게 살 필요도 없었을 테고 다른 여자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겠죠. 그들은 남자들과 교접해서 임신하고 아이도 낳았을 거예요. 물론 그렇다면 그들은 왼손에 반지를 끼지도 못했을 테고, 누가 집에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잠자리를 제공하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여느 여성들처럼 어머니로서 살아갈 수는 있었겠죠. (...) 따라서 단기적인 접촉만으로도 잘 살아가는 동물을 보았을 때 나는 인간의 짝짓기 방식에서 잘못된 점이 바로 짝을 이루는 기간과 정도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침팬지들은 특정한 개체에게 깊은 감정을 품거나 하는 일로 고민하지 않았어요."(2권, 64~65쪽)
"문화화라는 세뇌"에 대해 보통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게 세뇌라니. 그렇지만 인류학자 마틴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우리는 현재까지 계속된 관습을 비논리적으로 정당화하며 수긍한다. 그게 바로 세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 인간은 문화적 합리화라는 묘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 아셔야 합니다. 인간이 하는 일 중에는 스스로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도 많아요. 우리 인류학자들은 사람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관습적 행동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말이 '언제나 그래왔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 기존의 행동양식이면 무엇이든 문화적으로 정당화하는 거죠."(2권, 104~105쪽)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가르칠 때 흔히 그 이유를 '선모충병'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틴은 반문한다. 돼지고기를 완전히 익혀 먹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그런 가르침의 진정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런 세뇌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명은 사후적인 정당화"에 불과하다는 결론과 함께.
그는 살아있을 때와 달리 성행위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뀐다. "당시 나는 성행위가 쾌락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성행위가 번식을 위한 보편적인 수단이라고 여기며,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남성이 가족과 자식을 돌보도록 묶어두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2권, 331쪽) 과연 오늘날의 성행위가 그런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을까? 성행위의 두 가지 기능은 서구화된 대부분의 사회에서 힘을 잃고 있거나 이미 잃었다. 낮은 출산율로 인구가 감소하고, 이혼율은 50%에 가깝다. 이를 두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어리석다.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적 체제 전부가 이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달라진 조건에 맞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워낙 어마어마한 문제라 제대로 대처하려면 거의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인류의 짝짓기와 가족제도를 비판한 다음 마틴은 자신의 삶을 엿본다. 그러고 나서 최종적으로 현대 사회의 폐해를 지적한다. 이 대목은 인류학 교수 마틴과 아서 니호프가 만년에 내린 최종 결론일 것이다. "모두들 자신의 심리를 치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만나지만, 실제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헤어집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는 거죠. 프로이트가 한 세기를 지배한 겁니다. 사회적 현실의 짐을 떠맡은 것은 다른 사람들, 주로 마르크스주의자와 동양인들이었습니다. (...) 알기 쉽게 말한다면, 사회적 현실을 부정하고 개인적 실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개인주의)가 바로 가족을 해체시키고, 이혼을 증가시키고, 개인들이 함께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독신 세대를 등장하게 한 원인이라는 거죠.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카운슬러, 변호사 등의 사람들은 단지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2권, 325쪽)
소설이고, 쉽게 쓰인 만큼, 아쉽다는 느낌도 남았다. 좀 더 학문적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경제인류학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서 불타올랐던 열의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현장감 넘치는 민족지든 이론서든 말이다. 아무래도 가이드가 필요하다. 일단 번역된 인류학 서적에 관한 서평모음이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시간이 나는 대로 찾아봐야겠다. 함께 공부할 도반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