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꼼수를 듣는다. 매우 즐겁게 듣는다. 내내 깔깔 댄다. 여느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보다 재밌다. 나꼼수는 경박하고 시끄럽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실을 종합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사실을 엮어 사건으로 실체화하고 흐름을 설명하는 역할은 주로 김어준 총수가 담당한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와 지금 교도소에 수감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발굴하고 의미를 갖는 사실로 내놓는다. 
일간 신문과 시사 주간지가 뜨문뜨문 내놓는 사실을 하나씩 주워 담아가며 실체적 진실으로 종합하는 일은 끈기를 요구한다. 며칠 전, 몇 주 전의 기사를 다시 읽어야 할 때도 있다. 더구나 주류 언론으로서, 누가 봐도 명백하나 ‘추정’할 뿐인 내용을 거르지 않고 곧이 말할 수도 없다. 사실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는 정보를 취합하고 사실의 덩어리로 조합하는 작업을 평범한 시민이 하기엔 버겁다. 그러므로 평범한 시민인 나는 그가 최소한 신뢰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만 하면 된다. 
여러 사람들이 ‘이제 나꼼수를 끊어야겠다’ ‘나꼼수 우려스럽다’고 말한다. 그 주장을 직접 보고 듣지 않았으므로 이유와 근거는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없어 소셜네트워크 여론이 어떤지 전혀 모른다. 그러므로 그냥 내 의견만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나꼼수를 듣는 이유는 두 가지다. 웃기다. 유익하다. 더 이상 웃기지 않거나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유익하지 않게 되면 안 듣는다. 한편으로 나꼼수의 방송 스타일 자체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시끄러운 웃음소리, 서로 제 할 말하기 바쁜 듯한 대화를 듣는 일 자체가 괴로운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듣는 이들과 듣지 않는 이들이 서로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나꼼수를 듣는다고 해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단지 내가 웃겨서 듣고, 내게 유익해서 듣고, 위로받아서 듣는 거다. 
나꼼수의 진행 방식, 마초스러움, 대중의 맹목적인 열광 등을 우려하는 먹물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우려하지 않는다. 대중의 타락을 우려한다. 합당한 근거로 현상을 분석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지웅 씨나 진중권 씨의 글을 읽어본 적 있고 의미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양쪽의 의견을 듣고 개개인이 알아서 판단하면 될 일이다. 다만 나꼼수에 변화를 요구하는 건 참 쓸모없는 짓인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돈을 들여 제멋대로 방송하고, 방송을 공개하는 요일도 정해놓지 않았다. 광고도 받지 않는다. 거기다 공권력으로부터 각종 위협과 탄압을 실제로 받고 있다.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건가 싶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꼼수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거 아닐까. 세계에 자신을 굳고 단단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들. '나꼼수 빠 되는 거 아냐? 이거 너무 맹목적인 거 아냐? 나는 언제나 객관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어야 하는데?' 왜 스스로를 믿지 못할까. 자기 자신의 지성을 그리도 신뢰하지 못하나. 김어준 총수의 화법이나 글투가 너무 재밌는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따라할 수도 있다. 가끔 스스로 그런 걸 느낀다. 그럼 어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자기화한다. 나란 인간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 그 모든 게 난데. 
나꼼수가 그토록 재밌을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현 정부 때문이다.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단 하나의 목적만 알면 현 정부의 여러 정책 시도의 이유와 배경을 대부분 꿰뚫어 볼 수 있다. 각하와 그 팔들의 사익 추구. 1년 반 동안 한겨레신문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읽었지만 난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꼼수는 그걸 했다. 인정해야 한다. 나꼼수 대박. 
책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았지만 한 마디만 하면 될 것 같다. 이 책 역시, 김어준 대박. 김어준 스스로 ‘무학의 통찰’이라 말하는 그의 사태 분석 능력은, 날카로우면서 깊다. 저자의 정치적 위치와 그의 정치적 목적만 알고 읽으면 된다(그 지점이 일치하는 독자라면 ‘김어준의 2012 정권 교체 플랜’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모르겠으면 일단 마음 끌리는 대로 움직여도 좋다. 그렇게 정치에 관심 갖고 신문 읽고 책 보며 살다 보면 자연히 그런 것을 볼 줄 아는 눈과 지식이 생긴다. 더불어 자기의 선호, 취향, 스타일 같은 것도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 걱정하지 마시라! 

하지만 이렇게 조직이 그 근본부터 다시 재편되는 상황 앞에서는 자기 지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헤게모니 다툼이 어느 조직에나 있게 마련인데, 진보는 그런 다툼을 당연한 세력 싸움으로 인정하지 않고 겉으로는 논리 논쟁인 양 진행한다고. 하지만 누가 설득되려고 논쟁을 하나. 난 이래서 당신에게 설득당할 생각이 없다는 걸 일방 주장하는 게 논쟁인데. 
그리고 애초부터 설득될 생각 없이 치르는 그런 식의 논리 논쟁은 각자 앞세운 논리 뒤의 욕망을 서로 비공식적으로 비난하게 되어 있어. 저거 말로는 저러지만 사실은 전부 자기 지분 챙기려고 하는 거다, 이런 소리들. 차라리 보수는 자기 지분 챙기기를 내놓고 하니까, 그리고 힘이 한쪽으로 기울면 바로 복종하니까, 이런 종류의 소모전은 하지 않아.
하지만 진보는 이렇게 헤게모니 다툼이 있을 때, 자기 욕망을 논리와 이념으로 프로세스해야 하는 이중 수고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서로에 대한 불신만 강화시킨 채 끝이 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219~220쪽

연애는 내가 가장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가장 뜻대로 안 되는 상대와 만나는 거거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통해 자기가 누군지가 드러나지. 그걸 받아들이느냐 못 받아들이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러면서 자신의 하이와 로를 경험하고 바닥과 경계를 확인하게 되지. 그 경계를 이어 붙이면 바로 자신의 실체지.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자기가 아니라, 실제 있는 그대로의 자기와 만나는 거지. 자기 대면이지. 그렇게 더 이상 자기기만을 할 수 없는 임계를 지나야 사람은 비로소 성장하지. 합리화로 극복할 수 없는 임계점. 267~268쪽

닥치고정치김어준의명랑시민정치교본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지은이 김어준 (푸른숲, 2011년)
상세보기

Posted by 권고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