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도서관에서 빌려놓고 대출 기한을 넘겨 버렸다. 얼른 써 놓아야 가서 반납할 수 있을 텐데. 혹여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강신주 씨가 제자백가에 대한 연속 기획물을 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자백가, 바로 느낌이 왔다(어찌 되었든 전공이 그쪽이다 보니 아는 게 아주 없는 건 아니라서). 내가 아는 한에서 가장 어지러웠던 시대, 인간의 목숨이 가장 하찮게 취급되었던 시대가 바로 중국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이다. 당시 사람들도 당연히 의문을 품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이 시대의 잔혹함을 해소하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고민하고 자기가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대의 한복판으로 나서려 했던 사상가들을 '제자백가'라고 부른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생각을 들고 나왔다. 오죽하면 '백가쟁명(울부짖으며 싸움)'이라 했을까. 후대의 우리들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이천 년이 넘게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존재하고, 피지배층은 지배층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며,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관중의 외교정책이나 이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노자의 주장은 동일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혜를 베푼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강자의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강압과 강제의 논리를 통해서 자신이 얻으려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강자만이 약자에게 먼저 시혜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78~79쪽 

저자는 제자백가의 선두에 선 사람으로 '관중'을 꼽는다. 지금까지의 철학사는 공자를 제자백가의 시초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관중은 제나라의 환공이라는 군주를 도와 춘추시대 최초로 제나라를 '패자'의 위치에 올려놓은 재상이다. 그는 이후 춘추전국시대 지식인의 이상적인 모델이 되었다. 군주 역시 관중과 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숙소를 마련하고 학자들을 초대하게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 관중은 철학자보다 정치가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관중이 한 나라를 패자의 위치로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새로운 관점으로 사회와 인간을 바라볼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그의 정치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문장이 있다. "주는 것이 취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다."(사기, 관안열전) 

공자의 절박함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이 지금 등산로를 잃고 헤매는 등산객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새로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이미 만들어진 길을 되찾아야 하는가? 여기서 공자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했던 인물이다. (…) 마침내 도를 갈망하던 공자는 지금은 잡초로 우거져 있지만 분명 이전 주나라 사람들이 갔던 찬란했던 길, 즉 ‘주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물론 공자가 주례라는 길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걸어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 그 결과 공자는 주례만이 인간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 살아보았다는 경험은 무서운 확신을 낳는 법이다. 184~187쪽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긴 대목은 바로 위의 문단이다. 공자는 새로 길을 만들 것인가, 이미 만들어진 길을 되찾을 것인가의 길목에서 후자를 선택했던 사람이다. 관중은 전자를 선택하였고 성공적으로 길을 낸 경우다. 공자는 때로 자기반성을 강조하며 중국 역사 최초의 철학자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예', 주례라는 서주 시대 지배층의 윤리.행위규범 자체를 반성하지는 않았다(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관중을 공자보다 더 낫게 평가하는 듯하다. 적어도 관중은 당시 人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民의 삶을 직시할 줄 알았고, 그들 역시 자신(人)과 다를 바 없는 욕망의 주체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한 발짝이 관중의 성공 요인 아니었을까.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쉽고 친절하게 곁들여 준다. 얼마 전에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처럼 이 책도 대중적인 철학史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다. 그 이름이 불러올 수 있는 선입견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덧붙이자면, 책은 원전과 사료에 충실한 편이다. 관중이나 공자의 언행을 담은 기록을 원전으로 직접 참고하여 해석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공자의 언행 사이 행간을 읽어내는 대목을 읽을 때, 내 경우에는 무릎을 치며 통쾌해 했지만 유학을 전공으로 삼는 이들이라면 눈썹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성인 공자가 제자들 단속하느라 수제자 하나를 뒷담화하셨단 말야? 

이 책은 기획물의 2권인데, 1권도 곧 빌려 읽을 생각이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다 읽으려 한다. 저자의 풀어내는 솜씨가 썩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바로 그 '제자백가의 시대'가 지금 내게 매우 흥미롭다. 거의 뭐 대하소설 읽는 기분이란 말이지.  

관중과공자패자의등장과철학자의탄생
카테고리 인문 > 철학
지은이 강신주 (사계절,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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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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