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읽은 모양이다. 구글에서 검색하니 글이 적잖다. 의외였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주인장 윤성근 씨의 책에서 추천 받아 읽은 책이다. 이만큼 재밌는 소설은 보지 못했다고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소년/녀 이/가 있다. 그/녀는 섬에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뒤집어 씌운다. 섬 둘레에 기둥을 씌우고 죽은 동물의 머리를 꽂는다. 새총과 강철 구슬을 들고 다니며 동물을 사냥하고 거대한 쥐와 사투를 벌인다. 전쟁용 시설로 쓰인 '벙커'를 자기만의 기지로 삼고 제단을 세운다. 집 다락방,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자기만의 공간에는 '말벌 공장'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모두 상징이다.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일은 패턴의 일부이며, 우리는 이 패턴에 대해 적어도 약간의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강자는 자기 자신의 패턴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패턴에 영향을 끼치고, 약자에게는 이미 정해진 진로가 주어진다. (...) <말벌 공장>이 패턴의 일부인 것은 그것이 인생의 일부이며 죽음의 일부 - 이것이 더 중요하다 - 이기 때문이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공장>은 매우 복잡하고,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부품도 복잡하다. <공장>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질문이 종말로 나아가는 단초이기 때문이고, <공장>이야말로 <종말>, 즉 죽음 그 자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장점, 역점, 주사위, 책, 새, 목소리, 목걸이 따위의 쓰레기에 매력을 느낀다면 얼마든지 집착하라. 나에게는 <공장>이 있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관해 얘기해 주는. 179~180쪽

내게는 좀 어려웠다. 읽은 지 사나흘 밖에 지나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여럿 된다. 그 중 무엇이 내게 가장 강렬할지 아직 알 수 없다. 반대로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나는 상징에 매우 취약하다(시를 잘 못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초반부에선 별달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틀 쯤은 아예 손에서 놓고 있었다. 신뢰할 만한 독서가가 극찬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설 특유의 잔인-참혹-변태적인 장면과 그것의 묘사에서 기묘한 흥분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고 하면 거짓말이다. 실은 그런 게 있었다. 

방금 새로 불을 붙인, 피처럼 새빨갛고 내 팔목만큼이나 굵은 양초의 함몰된 정상은, 흔들리지 않는 불꽃과 외계인의 머리 같은 조그만 말벌 대가리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사이, 불꽃은 1센티미터가량 앞쪽에 위치한 말벌의 머리를 뒤덮은 밀랍을 녹여 두 개의 촉각을 드러나게 했다. 촉각은 잠시 곧추서는가 했더니 지직거리며 타올랐다. 밀랍이 녹아 흐르며 말벌 대가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곧 불이 붙었다. 말벌의 동체는 함몰된 크레이터 안에서 두 개째의 불꽃이 되었다. 불꽃은 깜빡이고, 딱딱거리며 곤충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불태웠다. 69~70쪽

이 대목을 다시 읽고 난 뒤에는 확신했다. 이만큼 새로운 장면, 이만큼 새로운 묘사는 쉽지 않다. 찾아보기 힘들다. 나 자신을 '벙커' 안에서 양초를 바라보는 프랜시스 콜덤에 이입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래도 나는 영국 어느 잡지의 서평가처럼 한 쪽 넘길 때마다 혹여나 무심코 지나친 것은 없는지 걱정하진 않았다. 그냥,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여러 서평가들이 말하길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가 녹아 있'댄다. 작품 내내 내 눈엔 띄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풉 그르게'하고 수긍했다. 수긍했을 뿐만 아니라 귀엽다고도 생각했다. 헐.

가만 생각해 보면 현대 영국 소설가의 작품을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닉 혼비 뿐이다. 음, 아, 찾아서 읽어볼까, 3초 쯤 생각하고 바로 마음 접었다. 대체 어디까지 궁금해 하려는 거냐.  


말벌공장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이언 뱅크스 (열린책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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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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