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단 무턱대고 읽어봐야 한다. 20대 초반 이전에는 기가 팍 꺾일 확률이 높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지해지는 20대 중반이더라도 어쩌면 비슷하게 기가 꺾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기자가 되고 싶어! 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기자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만약 내 안에서 '그래'라는 대답이 가능하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준비할 생각이 있었다.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 된다. 더 공부하면 된다. 무수한 친구들이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확신만 한다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기자 생활의 세밀한 부분을 아주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상식, 논술, 작문, 면접, 취재까지 일반적인 언론사 입사 시험의 각 단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준다. 언론인, 특히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이만한 안내서가 또 있을까 싶다. 뭐 어디 중앙일간지 기자라느니 하며 특강하는 자리에 갈 필요 없다. 위안 정도는 얻을 수 있겠다. ‘뭐야, 저런 인간도 기자질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거 있나.’
독자들은 빠르고, 거칠게, 그리고 무심하게 글쓴이의 필생이 담긴 글을 읽어내려 간다. 그런 글 읽기 호흡을 잠시라도 붙들어 매는 힘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나쁜 글은 그 호흡을 더 숨 가쁘게 만드는 글이다. 그리고 그 전형이 글쓴이의 존재를 과하게 담아내는 글이다. 혼을 담고 있는 나를 당신들이 함부로 지나칠까봐, 무심하게 건너뛸까 봐, 곳곳에 나를 초조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그런 노출은 독자들이 싫어한다. 노골적인 노출은 전혀 야하지 않다. 노출은 은근해야 한다. 한 편의 글을 골목길에 비유하면 이렇다. 독자들은 고즈넉한 가로등 아래 편안한 마음으로 골목길을 걷는다. 그 끝에서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설핏 등장해야 한다. 145~146쪽
안수찬 기자는 현재 한겨레의 탐사보도팀장이다. 참 적절한 보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안수찬, 이라는 이름을 몇 년 전 한겨레21의 기획 기사 ‘노동 OTL'에서 알았다. 그 전에도 문장이 남다른 데가 있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현장에 장시간 머물며 쓴 르포 기사에서 글은 빛을 발했다. 작가 김훈 못지않게 독특한 호흡의 단문은 기사 속에서 하나의 문체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리듬’이 있었고 설득력 있는 ‘정서’가 있었다. 끊임없이 사실로 내려 가려고만 하는 심심한 기사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러므로 훌륭한 글쓰기 교재이다. ‘좋은 글’과 논술․작문을 잘 쓰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7․8․9장은 구체적인 지침까지 담고 있다. 발췌문들은 주로 이 장들에서 나왔다. 독자 각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든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다. 내 글이 산만해질 때마다, 더이상 나아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마다 참고하고 싶다.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르포 기사, 피처 기사를 다루는 장이 각각 이어진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 어떤 태도(자세)와 안목이 필요한지 설명한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
사서 읽길 잘했다. 서재 눈에 잘 띄는 곳에다 꽂아놓을 생각이다. 표지 디자인이 나쁘지 않다. 다만 제목이 좀, 싸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속이 꽉 찬 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일정한 수준에 오른 뒤에는 노출의 욕구를 절제해야 한다. 노골적인 노출은 오히려 거부감을 준다. 노출의 공포와 욕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잘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 (…) 여기서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할 필요성이 등장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노출시키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다. 좋은 글은 글 쓰는 자신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한 글이다. 무작정 모든 옷을 벗지 않는다. 나의 어떤 부분이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일지 헤아려서 적절하게 내보인다. 137쪽
글쓴이의 자아가 드러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논리와 감상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 과정과 경로를 흉내 내야 한다. 139쪽
혼을 담아 쓰지 않는 한 글쓰기 실력은 절대로 늘지 않는다. 손가락 끝으로 관성적으로 써 내려가는 글을 수천 편 쓴다한들 그는 글쓰기를 정복할 수 없다. (…)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혼을 담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이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일기를 쓰는 건 좋은 예다. 혼자만의 시 습작을 하거나 단편 소설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뜨거운 연애편지를 매일 쓸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관건은 나의 모든 것을 담는 글을 쓰는 것이다. 144쪽
상식과 지식과 관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뭔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상식의 수준인지 관점의 수준인지를 분간해 봐라.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의 절대다수는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건 아는 게 아니다. 상식이란 단편적 사실의 나열 또는 무질서한 묶음이다. 지식은 사실의 일정한 체계다. 관점은 체계적 지식에 역사성을 보태는 일이다. 159쪽
글쓰기의 기본 단위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다. 문장과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어렵고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를 찾는 데 시간을 쓰지 마라. 전체 이야기 구조가 안정감을 갖고 있는지, 각 문단은 잘 구분되었는지, 각 문단 가운데 지나치게 장황한 것이 없는지 등을 먼저 살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글쓰기는 각 문단의 규격을 정해 놓고 여기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각 문단을 서너 문장 또는 서너줄 정도로 규격화시키고 이 분량을 벗어나면 곧바로 다음 문단으로 옮겨 글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버릇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각 문장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장면이 바뀌면서 이야기가 이어지듯 글은 문단을 바꾸면서 하나의 서사를 완성한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문장을 줄이고 단어에서 기름기를 빼는 방식으로 퇴고하면 된다. 201~202쪽
다만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꿈이 하나 있다. 실존의 대부분이 걸린 ‘노동’에서 가치와 재미를 찾지 못하고, 나머지 ‘여가’ 시간을 빌어 이를 보충하는 삶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노동으로 인해 내가 행복해야 한다. 동시에 나의 노동이 보다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적어도 나의 노동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공동체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까지가 내가 꿈꾸는 재미와 가치의 합일이다. 기자로서 그 꿈의 최소치는 잘못된 기사를 쓰지 않는 것이다. 나도 덜 힘들고 사람들도 덜 불행해질 것이다. 그 꿈의 최대치는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이다. 나도 즐겁고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 일을 수월하게 치러냈으면 좋겠다. 365~366쪽
긴 고통 끝에 찾아오는 짜릿한 쾌감이 아니라 작은 재미의 연속 끝에 쌓이는 넉넉한 행복이 필요하다. 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눈앞의 억압과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것에 저항한다는 명분으로 작은 것에 무릎 꿇을 가능성이 높다. 종국의 결정적 행복을 위해 무수히 많은 기쁨을 미뤄 둘 가능성이 높다. 3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