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선, 안수찬, 전종휘, 임인택. 한겨레21, 네 명의 기자들. 그들은 한 달 남짓의 기간동안 노동 현장에서 직접 일해보기로 한다. 

감자탕집, 대형마트, 가구공장-이주 노동자, 컨베이어 벨트. 그들의 일터. 


주간지 연재 당시 얼핏 보고 흥분했었다. 아니 이런 기획이라니! 대단하다. 멋지다. 이런 아이디어를 조직 내에서 공개적으로 제기할 수 있고, 논의할 수 있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니. 한겨레21이라는 조직에 대해서도 경탄했었다. 


읽어야지, 읽어봐야지, 오랫동안 마음만 먹고 있던 책이었다. 사무실에 꽂혀 있어 마침내 읽었다. 다 읽은 지도 한 2주는 되었다. 어쩌다 토요일 새벽에 독서일기를 쓴다. 맥주 먹고 싶다. 


"문제의 해결은 노동의 '인간성'을 찾는 데서 시작되리라 믿는다."(임지선)

여성 빈곤 노동자의 삶을 더욱 빈곤하게 하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다. 손님과 사장과 남편과 남자들에 치이고 무시당해도 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다. 여성이고, 노동자이고, 빈곤해서다. A갈핏집 미자 언니 같은 여성 비정규직이 439만 명이다. B갈빗집 주방 언니 같은 기혼여성 장기 임시근로자가 200만 명이다. 식당에서, 마트에서,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이들이다.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이다. 75쪽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차가운 돈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연대다. 내가 지금 테이블벨을 누르면 달려오는 이가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이 조금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록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83쪽


연재 당시의 나는 이런 대목을 보고 울컥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저 불편해진다. 한편으로 '따뜻한 관심'에 눈이 간다. 식당 노동자들을 그저 하인 부리듯 대하는 인간들이 한국에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들의 그 마음들은 어떻게 바꿀 것이며. 9시 뉴스에 감동적인 뉴스라도 하나 나와야 바뀔 것이며. 

노동의 인간성을 되찾는 데서 시작되리라 믿는다, 는 그의 믿음이 내게 불편하다. '그들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절망적이다. 노동의 인간성은 대체 어떻게 가능할지. 국민 경제 전체의 성질이 지금과 완전히 다른 구조로 뒤바뀌고, 동시에 노동의 '인간성'을 찾으면서 생산성 향상을 달성할수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지. '사람'이라는 말이 현실의 무엇을 지시하는지.  


그는 좋은 편이 누군지 안다고 말했다. "강남 사람들은 품질이 좋으면 값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사간단 말이야." 그는 A마트의 강남 지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강북 것들은 무조건 깎아달라 덤으로 달라 그런다고. 강남 사람들은 쇼핑하는 태도부터 달라. 눈이 반짝반짝해. 사람들한테서 빛이 난다고, 빛." 94쪽


글쓰기 혹은 문장으로 보자면 안수찬 기자의 글이 가장 좋았다. 네 기자 모두, 기자답게 단문으로, 최소한으로 축약된 문장으로 사태를 담는다. 기본적으로 이런 문장을 좋아한다. 그런데 모르겠다, 임지선 기자는 분명 그러했고, 다른 기자들 역시 어찌하지 못하는 그 마음, 억누르려 해도 비어져 나오는 슬픔 울분 같은 것이 단어 사이에 비죽비죽 튀어나왔다. 


노동 세계엔 일하는 저주받은 자와 앉아 일하는 복된 자, 두 부류만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215~216쪽

초라한 일자리가 많은 건지, 가난한 노동자가 많은 건지 알 수 없다. 237쪽


알 수 없다는 말을 나는 정말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가구공장의 노동이, 컨베이어 벨트에서의 노동이 아무리 '인간적'이라 한들 초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좀 더 느리게 돌아가야 하나. 좀 더 웃으며 일해야 하나. 좀 더 적게 일하고 많이 받으면 되겠지. 저 중국산 싼 값과 어떻게 경쟁하나. 질이 좋아야지. 질은 어떻게 좋아지나. 잘 만들고, 기술력 있게 만들고... 

그래서 김상봉 선생님의 책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는 의미 있는 책이다. 답을 찾으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얼른 읽어야지...


대부분의 젊은 공장 노동자는 퇴근 뒤 PC방에서 1~2시간 게임을 하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 스물넷 원식 씨는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만 하는 건 내가 아니고 죽어있는 나"라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곤죽이 된대도, 퇴근 뒤 새벽 1시 남짓까지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그는 "유일하게 '자신'으로 돌아가 살아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247쪽


모르겠다. 나는 이런 대목을 보면, 그래도 사람들은 '위로'를 필요로 한다고 진단한다. 그나마 위로라도 바라서 다행이다. 자기가 어디 쯤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다. 부모 세대의 삶은 우리에게 모델이 되어주지 못한다. 어떻게든 자영업을 하거나, 어떻게든 부동산 투기를 해가며 우리를 먹여살렸다. 나는 한 달에 이백 안 되는 돈을 받으며 혼자서 그럭저럭 산다. 결혼은 무슨 돈으로 할 것이며, 집은 살 수 있는 것이며, 나이 사십이 넘어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며, 아이는 낳아 기를 수 있을 것이며, 이 도시에서 안전한 양육은 가능할 것이며. 연봉 삼천을 훌쩍 넘는 내 동기들 선배들은 그나마 고군분투할 만할 것이다. 나는 월급을 받아 또 책을 왕창 산다. 


누군가 곡을 한다. 이 야밤에. 

그래도 한 편 썼다. 




4천원인생

저자
안수찬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0-04-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일할수록 가난해진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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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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