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 | 원제 The Thing About Life Is That One Day You'll Be Dead (2008년)


읽는 내내 엄청나게 개의 귀를 많이 만들어 두었다. 그 절반도 넘는 부분을 그냥 원 상태로 돌려놓았는데도 발췌문의 양이 아래처럼 가득하다. 


책을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들, 두서 없이 적어본다. 


본문 편집하느라 담당 편집자 고생 많이 했을 게 분명하다.(혹은 번역하신 선생님이 고생했을 수도 있다.)

이 책을 번역한 분을 직접 뵈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그런 내가 대견하다. 이만한 '옮긴이의 말'을 쓸 수 있는 번역자는 많지 않고, 더구나 이 글을 쓴 분이 국내의 몇 안 되는 '과학책 전문 번역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문학동네, 대형 출판사들, 얄밉다(라고 쓰고 어쨌든 부럽다, 라고 읽는다). 크라프트지와 비슷한 느낌의 표지에 본문 2도로 책을 만들었는데도 가격이 1만 3천원밖에 안 한다. 

국내에서 아마 이런 종류의 글을 쓸 줄 아는 필자는 없을테고('죽음'에 관한 거의 모든 자연과학의 발견과 더불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서구 사상가 및 철학자들의 발언들이 총망라되어 있다시피 하는데, 그 모든 단편들을 아우르는 것은 100세를 맞이해 아직도 팔팔한 아버지와 나이 오십에 요통으로 고생하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글에 익숙한 독자들도 많지 않을텐데, 어떻게 책이 이렇게 많이 팔렸을까. 


작년 연말쯤부터 입에 달고 다닌 단어 중 하나가 '몸'이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게 뭐가 있니? 내가 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게 뭐니? 겨우 몸이고, 오직 몸뿐이야. 내가 너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너를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도 너의 몸일 뿐이야." 하지만 하나가 더 있었다. '말'이 있었다. 하긴, 학을 떼도 보통 뗀 게 아니어서 그간 '말'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넣고 다닐 새가 없었다. 몸으로만 존재하는 우리들이 서로에게 다리를 놓고 그게 뭔지 진짜이긴 한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무언가를 서로에게 던지며 주고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 죽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들에게는 인생의 가장 좋은 것 두 가지인 스포츠와 언어가 더욱 각별해진다. 스포츠, 저자에게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육체이고, 한순간이나마 자신의 육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안겨주는 행위이다. 그리고 언어, 그것은 각자의 육체에 갇힌 사람들이 서로 다리를 놓는 수단이다. 이 짧은 삶에서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어쨌든 수다를 떠는 것, 울적한 농담을 던지는 것, 그것 말고 우리가 뭘 하겠는가. 그리하여 결국 이 책은 우리의 존재이자 한계인 육체의 애틋함에 관한 에세이이다. 331쪽, 옮긴이의 말


어쩜 나는 요즘 두 가지에 매우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에 심지어 사흘 북을 치러 가기도 한다. 지난 한 달 사이 클럽에도 세 번이나 갔다. 샤워를 하다 가끔 북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매일 '읽지'. 그게 일이기도 하거든. 몸과 말, 몸과 말, 우리가 삶에 최선을 다해서 대처하려 할 때 아마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두 가지일 것이고, 우리가 노력함으로써 개선 혹은 변화가 가능한 유일한 두 가지일 것이다, 몸과 말. 그 밖에는 글쎄, 나는 모르겠네! 



아이의 손톱은 일주일에 1밀리미터쯤 자란다. 발톱이 자라는 속도는 손톱의 4분의 1 정도로 한 달에 1밀리미터쯤 자란다. 피아니스트나 타자를 많이 치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손톱이 빨리 자란다. 손톱은 11월에 가장 빠르게 자라고, 7월에 가장 느리게 자라며, 밤에는 덜 자란다. 날씨가 몹시 추울 때에도 손톱이 느리게 자란다. 31쪽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마사 그레이엄은 말했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싹할 정도로 서로 다른 동물들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모두 같은 동물들이다. 포대기에서 관을 향해 움직여가는 우리의 몸은 사람이 세상에 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54쪽


그리고 무릇 실존적 여정은 화학의 도움을 받는 법이 아닌가? 나는 평생 갖가지 언어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전에 알프라졸람 0.5밀리그램을 복용하는 것만큼 효과적으로 말 더듬기를 완화시켜주는 치료법을 보지 못했다. 근육 이완제 이부프로펜은 분명히 내 요통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팍실, 항우울제이기도 한 그 약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 팍실이 만성 통증에 쓰인 역사는 10년이 넘는다고 했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매일 10밀리그램씩 팍실을 복용했다. 히죽거리는 바보천치가 될까봐 약간 우려되는 건 사실이지만, 이미 내 안에 바보스런 면이 자리를 잡은데다가, 이제까지 줄기차게 시무룩한 태도로 세상을 살아왔으므로 조금 히죽거린다고 해서 큰일이라도 있겠나 싶다. 178쪽~180쪽


큰 위험에 노출된 생물은 개체 유지에 적게 투자하는 대신 번식에 많이 투자하고, 낮은 위험에 노출된 생물은 그 반대로 한다. 187~188쪽


나는 즐겁고 충만한 관계의 사랑과 온기를 필요로 하고 바라며, 그녀도 같은 것을 원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친구를 원한다면 개를 샀겠지." ... 틀림없어, 이건 결정타다. 202쪽


인생의 의미가 무어냐는 질문에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답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까닭은 어느 유별난 물고기들이 특이한 지느러미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해서 육상 생물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또 운석이 지구를 덮쳐서 공룡을 멸종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일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포유류가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또 여러 차례 빙하기를 거치면서도 지구가 단 한 번도 꽁꽁 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또 25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어느 작고 끈질긴 종이 생겨났고, 그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지금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차원적인 대답'을 갈구하지만, 사실 그런 답은 없다." ... 스토파드는 진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터무니없이 비상식적인 것 같다. 하지만 끈적끈적한 초록색 덩어리가 충분히 시간이 흐른 뒤에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대안 명제에 비해서는 좀더 말이 되는 것 같다.' 312~313쪽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어떻게 보면 바로 그런 자세였다. 기존의 지혜를 의심해보라는 것, 스스로 본 시각을 고집하라는 것, 언어를 운동장처럼 생각하라는 것, 운동장을 천국처럼 생각하라는 것. 아버지는 내 입과 내 타자기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고, 내가 내 몸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다른 누구의 거죽이 아니라 내 거죽에 담겨 있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다. 321쪽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저자
데이비드 실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3-19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죽음이라는 결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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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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