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 나를 지켜주는 기업이 필요해요

김순천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먼저 이 책의 카피들을 소개하고 싶다. 앞표지 카피. "노동자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우리 시대 기업의 맨얼굴." 뒤표지 카피. "바른말을 했다고 쫓아내는 회사, 돈이 있어도 월급을 주지 않는 회사, 수없이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회사, 일상적으로 노동자를 괴롭히는 회사... 지금 당신과 당신의 회사는 안녕한가요?" 부제와 이 카피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숱한 노동 관련 사회과학서들, 숱한 기업 관련 경제경영서들, 두 종류의 책들이 모두 말하지 않고 보지 않은 지점을 발견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아... 목차 보고 지은이 소개 보자마자 속에서 어떤 마음이 불끈. 이런 기획을 하는 편집자가 있고, 저자가 있고, 그래서 책이 있다. 이제 독자만 있으면 되는데." 


한 르포르타주 작가가 우리 시대 기업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삼성전자 현직 노동자와 전 노동자, 한국타이어 해고 노동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SJM 노동자, 반월공단 노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금융계 공기업 노동자, 동부그룹 노동자, 중앙대학교 학생들과 교수, 취업준비생, 한 사회적 기업의 사장과 노동자, 공장장. 그리고 노동자들의 말에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짝을 지었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이원재 씨, 공인노무사, 한겨레 기자, 교수 등등. 책의 부록으로 '당신의 회사는 안녕한가? - 직장인들의 슬픈 통계'라는 제목을 달고 각종 통계 자료를 깔끔한 그래픽으로 실어놓았다. 정말 오랜만에 '기획'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회사밖에 없잖아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가는 곳이 회사이고 회사 끝나고 집에 와서 집안일 좀 하다보면 하루가 다 끝나는 거잖아요. 회사는 진짜 저의 전부인 것 같아요.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살맛이 나니까요. 야단이나 맞고 있고 박스로 머리나 맞고 있으면 우울하잖아요." 157쪽


인터뷰는 문답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인터뷰이의 말을 하나의 글로 정리해 서술해놓았다. 인터뷰어의 고생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터뷰이(노동자와 전문가 모두)들을 선정하기까지, 그들을 만나 인터뷰를 설득하기까지, 인터뷰의 내용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사하고 질문을 준비했을 편집자와 저자의 노력을 상상만 해도 박수를 치고 싶었다. 풍성한 언어를 가질 시간도 마음도 없었던 노동자들의 삶에서 새로운 언어를 뽑아올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 고생은 다행히도 빛을 발했다. 이 책은 단지 빛나는 기획으로만 그치지 않고 흥미로운 보고서로 탄생했다. 좀 더 새로운 언어에 대한 나의 기대는 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책은 새로운 이론을 전하는 학술서도 아니고, 언어의 쉬움과 새로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흔한 사회과학 교양서도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로 이루어진 르포르타주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10장 '악의 탄생'이 보여준 오늘날 중앙대학교의 모습이다. 2000년대 중반 중앙대학교에 갈 일이 잦았다. 여러 친구들이 중앙대학교를 다녔다. 당시 그 학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대학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활동이 활발했다. 한 학생이 들려주는 오늘날 중앙대학교의 모습은 직원이 학생을 미행하고 사찰하는 학교, 비유 혹은 비난의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두산 학원'으로 전락한 4년제 대학교의 모습이다. 취업, 스펙, 생존 경쟁 같은 오늘날 20대 대학생들의 삶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언어들이 그 학교에서는 교수와 총장, 이사진의 입을 빌어 그 공간을 지배하는 절대 규칙이 되고, 대다수 구성원들(심지어 교수들마저)은 사회와 대학을 오가며 증폭하는 코러스 속에서 순종한다. 


이 문장들은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말로 나설 수 있을까? 이 고민은 결국 약자들의 삶에 함께할 수 없고 함께할 리도 없는 한 시민의 당파성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연대는 결국 언어로만 가능한 것 아닐까. 머리보다 가슴이, 가슴보다 발을 움직이는 일이 중요하다는 신영복 선생의 말에 공감하며 내 삶의 지침으로 삼았던 때가 있었고, 여전히 그러는 옛 친구들이 있지만, 결국 세상 모든 약자들의 현장에 내 발이 동시에 언제나 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발마저 움직이지 않는 지금의 나의 삶은 충분히 비난받을 만한 것임에도, 여전히 당사자이지 않은 사람들의 연대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헛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논리가 필요하고, 말이 필요하다. 당사자들과 그들의 동지들은 결국 '소수'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힘이 아닌 언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그리고 나는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결국 그 많은 당사자들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약자'임을 증명하려 하고 '법'에 호소한다. 그들의 언어는 그들의 적이 아니라 바로 제삼자들, 우리를 향해 있다. 


덧.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쉬웠던 것은 표지. 검은 바탕에 눈물을 형상화한 방울들과 털이 듬성한 한 괴물(아마도 기업)의 뒷모습. 잔인하거나 끔찍해 보이지는 않지만, 멋진 부제와 카피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지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저자
김순천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3-01-0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기업은 왜 노동자를 불행하게 하는가?나를 지켜주는 기업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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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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