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공화국의 비극 -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 

뤽 폴리에 지음 | 안수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원서 2009년)


읽은 지 몇 달 되었다. 아마 올해 1월쯤. 지인의 소개로 손에 들었고 친구들과 함께 읽었다. 문고판 크기, 170쪽 남짓한 작은 책. 흥미로운 책이었다. (읽은 지 몇 달이나 된 책을 다시 쓰려니 아 귀찮고, 내가 이걸 굳이 써야 하나 싶고. 그래도 쓴다. 에이씨.)


이 책은 한 프랑스인 저널리스트의 르포르타주다. 책의 헌사를 아버지에게 바쳤다. "돌아가시기 전, 내게 나우루에 직접 가서 "그 모든 것이 정말 사실인지 알아보라"고 말씀하신 아버지께." 저자는 지구 상의 거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한 나라의 실상이 사실인지, 어떻게 해서 일이 그렇게 되고 말았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부제는 다소 거창하지만, 적절하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파리의 구 하나만 한 크기의, 오늘날 전체 인구수 7,000명이며 한때 1,500명 이하이기도 했던 작은 나라. 나우루는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다.("1970년대, 나우루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 달러에 육박했는데, 이는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석유 생산국가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52쪽)) 막대한 부는 인산염 덕택이었다. 인산염은 비료로 쓰이는 물질이다. 태평양을 오가는 철새들의 새똥이 나우루의 땅과 산호에 스며들어 막대한 양이 매장되어 있었다. 더구나 "인광석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농업 발전을 가져오지만, 전시에는 폭발물 제조에도 쓰였다."(36쪽) 


그러니까, 이 작은 나라에 대한 이 작은 책은, 막대한 부가 갑작스럽게 주어진 한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흥미로운 실험 보고서'이다. '흥미로운 실험 보고서'라는 표현은 냉정하고 잔인한 말이다. 이 실험의 결과, 적어도 오늘날에는 국민의 절반이 당뇨에 시달리고 있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평균 수명은 50세에 불과한 비참한 현실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단지 '잔인하고 거침없는' 자본주의가 평화로웠던 한 섬과 그 섬의 주민을 농락하고 몰락하게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흥미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은 나라의 짧은 이야기는 근대의 엄청나게 중요한 여러 주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인산염이 막 개발되기 시작하던 때 나우루공화국의 지도자는 해머 드로버트라는 사람이었다. 서구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완벽한 사회주의 사회를 나우루에 건설하려 했던 엘리트였다. 사실상 그가 ‘나우루공화국’을 설계했다. 그는 언젠가 인산염이 고갈될 때를 대비해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해외에 다양한 형태로 투자했다.(주로 부동산이었다.) 나우루공화국은 "심지어 주민들의 화장실까지도 국가가 청소해주었다.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가정부들이 집을 정돈하고 청결하게 유지시켜주었다. ... 주민들은 아침에 출근하려고 일어날 필요도 없었다."(53쪽) 국민들은 때로 일곱 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고, 길에서 자동차가 고장 나면 그냥 차를 도로에 내버려두기도 했다. 그들은 일상의 대부분을 여가 활동으로 보냈다. 거의 모든 국민이 배달된 인스턴트 음식을 먹었다. 국민 절반이 고통 받고 있는 당뇨는 바로 부족한 운동량과 기름진 인스턴트 음식의 결과다. 하지만 해외 투자는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고, 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나우루공화국은, 인산염이 고갈되자마자 몰락했다. 


누구나 궁금할 것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드로버트의 뒤를 이은 부패한 지도자와 관료 들? 부를 향유할 줄만 알았던 천진난만한 국민들? 나우루공화국의 부를 뜯어먹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던 서구인들? 제국주의, 아니 이 악마 같은 자본주의? 


모든 것이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흥미를 끈 부분은 제도의 설계의 그것이 사회에 뿌리내리는 문제였다. 해머 드로버트는 비교적 혜안을 가진 지도자였던 것 같다. 그는 부를 국민들에게 가능한 고르게 분배하려 했고 이후에도 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즉, 그는 공정한 국가와 제도를 설계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우루공화국의 실제 행정 운용은 그의 재임 시기에도, 실각 이후로도 완전히 엉망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역사학의 엄청나게 중요한 주제를 불성실하고 무책임하게 다루고 있다.) 


나는 근대화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나의 부족한 이해로 근대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된다. 국가를 비롯한 제도 전반의 근대화와(정치적 근대화, 근대 국가의 성립?) 사회 구성원들이 관계 맺고 교류하는 방식을 포함하는 사회의 근대화(사회적 근대화, 근대적 개인의 등장?). 모든 피식민 국가의 근현대사에서 다음과 같은 비극을 발견할 수 있다. 독립을 이끈 지도자들은 대개 서구 유학파 출신이었다. 그들은 서구 사회의 명과 암을 접하고 공부했다. 같은 길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었고 때로 몇몇은 그런 나라의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제도를 설계하고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조국의 국민들 태반이 문맹일 수도 있었고, 행정 기구와 세금을 대체로 용인하지 않기도 했다. 즉, 국민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읽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서도 바로 이런 문제를 생생히 그리고 있었다.)


나우루 사람들이 바로 그랬다. 물론 그들은 대통령과 헌법, 공화국을 별다른 불만 없이 수용했지만 아마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막대한 부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정치가와 관료 들이 모두 자신의 친척, 이웃이기 때문이었거나. 나우루 사람들은 스스로를 공화국의 구성원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통령과 정치가들을 공공의 것을 책임지는 인물로 여기지도 않았다. 모두 이웃이고 친척이었다. 지도자의 비전과 달리 사회 구성원 사이를 지배하는 원리는 전근대적이었다. 유학파 출신의 현명한 지도자들이 아무리 헌법에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문구를 삽입한다 한들, 조국의 인민들은 근대적 개인이 아니었다. 아주 드문 사례를 제외하면(확신컨대 있긴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시장이 뿌리내린 이후에 비로소 근대적인 개인들이 등장했다. 근대적 개인의 등장 이후에만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 맺는 방식이 바뀌었고, 공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등장할 수 있었다. 


한편 (나우루공화국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근대 국가의 성립은 일반적으로 막대한 폭력을 수반했다. (피식민지의 역사는 더 참혹했다. 침략과 수탈, 독립에 이은 내전과 혁명, 점철된 숱한 학살 .) 많은 정치철학자들이 지적하듯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 기구이다. 그리고 국가들은 그 독점을 국민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든 승인 받는, 즉 정당화하는 절차를 거친다. 근대 국가의 경우 그 절차의 마지막 단계는 일반적으로 선거였다. 전쟁을 하든 학살을 하든, 부정 선거든 간접 선거든, 어쨌든 마지막에 가서는 선거를 치르려 했다.(국민성의 확인, 공통성의 입증을 위한 손쉬운 수단?) 이를 국가 성립 과정에 일반화해서 적용하자면, 사회 구성원들은 폭력을 경험한 이후에만 새로운 독점을 승인했고, 그때에야 비로소 근대 국가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우루공화국의 몰락은 사회가 국가를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다시 한 번 불성실하고 무책임하게 결론 내렸다. 단지 범인을 찾고 싶다면, 형편없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나우루공화국 국민 모두가 범인이고, 숱한 서구인들이 범인이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이제는 중요한 게 아니다. 현재에 남겨진 우리에게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는 일만이 중요하다. 


(쓰고 보니, 내가 이래서 이 책의 리뷰를 안 쓰려고 했었던 것 같다. 노트북 앞에 앉은 지 1시간 40분 가까이 지났다. 오늘 밤 쓸 책으로 네 권을 골라 테이블 위에 쌓아두었는데, 이제 자야할 시간.)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저자
뤽 폴리에 지음
출판사
에코리브르 | 2010-05-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자본주의 문명에 농락당하고 짓밟혀 폐허가 되어버린 나라현재 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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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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