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 정복과 착취, 경외와 공존의 5백 년

존 헤밍 지음 |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3년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 세계에서 가장 큰 숲을 흘러 들어가는 곳, 아마존. 지난 오백 년 동안 아마존이 평화로웠던 때는 오직 돈 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뿐이었다. 오늘날 아마존은 소와 콩, 목재 때문에 파괴되고 있다. 아마존에는 "낙엽수들이 동시에 잎이 진다거나 하는 가을이 없고, 분해 작용이 느려져서 부식토가 축적될 수 있는 겨울도 없다. 열대림의 식물 생물량은 온대림보다 대략 다섯 배 많고 생장 속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열대우림 아래 대부분의 토양은 빈약하다. 부식토나 표토가 쌓일 시간이 없는 것이다. 또한 얕은 뿌리 때문에 나무들은 딱할 정도로 쓰러지기 쉽다. 일단 마구잡이로 쓰러트리고 나면 열대림을 되살리기가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이 때문이다. 파괴된 숲에 외래 작물과 가축을 재배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655쪽) 


가만 생각해보면, 대학 생활 하면서 수업 혹은 스터디를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즐거움만으로 이런 두꺼운 책을 스스로 찾아 읽는 친구를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나마 독서를 즐기던 내 친구들은 다들 철학을 읽었고, 소설을 읽었고, 사회과학을 읽었다.(나도 마찬가지.) 이렇게 먼 나라 먼 시대의 이야기를 읽기에는 시간도 마음도 없었던 걸까.(주위에 사학도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퇴근하고 빵쪼까리 저녁 삼아 먹으며 며칠 동안 차근차근 읽었다. 이 책은 1500년, 서구인이 아마존에 발을 디딘 이래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과 발견, 탐험을 담고 있다. 번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저자는 "요즘 같은 극단적인 전문화의 시대에는 보기 드물게도 두루두루 아는 19세기 자연학자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리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인류학, 생물학, 고고학 등 아마존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속속들에 꿰고 있"는 사람이다.(존 헤밍의 <아마존> 출간 기념 인터뷰 영상.) 여전히 내 친구들은 읽을 시간도 마음도 없을 그런 책. 

하지만 나는, 평생 아마존에 갈 일도 갈 마음도 없는 나는, 나의 작은 방 라텍스 담요 위에 앉아(때로 누워) 먼 나라 먼 시대의 이야기, 이미 죽고 없는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시간이 진정으로 평화롭다는 것, 나의 삶이 이렇게 심심하고 또 심심해져서 심지어 매일 똑같은 하루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게 되었다. 온갖 인간들의 온갖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책에서 내가 울컥했던 대목은 바로 이런 것들. 


검은 턱수염을 기르고 키가 크고 마른 스프러스는 조용하고 상냥했다. 그의 채집 노트와 컬렉션은 그가 남달리 부지런하고 꼼꼼하며 학구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73쪽


'우리가 강을 쏜살같이 떠내려갈 때 ... 강둑은 화창한 아침에 마치 무슨 마법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순식간에 온통 꽃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 나는 우뚝 솟은 나무들을 애석하고도 아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저건 새로 핀 디프테릭스 ... 저건 새로 핀 쿠알레아 ... 저기 저건 대체 뭐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이 장관을 차마 더는 볼 수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이 모든 예쁜 꽃들이 "정글의 공기에 달콤한 향기를 허비하도록" 남겨두고 와야 한다는 슬픈 상념에 빠져들었다.' 283쪽 


말레이 군도의 숲속에서 월리스(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진화의 문제들을 고심했다. 3년 후(1858년) 그는 몰루카에서 말라리아에서 회복 중일 때 자연선택, 즉 적자생존이 이러한 진화의 방법이라는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발상을 재빨리 글로 옮겨, 자신과 동일한 원리를 연구 중임을 알고 있던 다윈에게 보내 의견을 구했다. 다윈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월리스보다 열네 살 연상으로, 아직 자신의 연구를 출간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훗날 귀감이 될 만큼 정직하고 바르게 처신했다. 두 사람의 논문은 1858년, 린네학회의 유명한 모임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다. 월리스는 이론의 우선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하자 '매번 더욱 감탄하면서' 여섯 번이나 읽었다. 297~298쪽


1922년 혼동은 또 다른 시도를 위해 39살의 한 놀라운 독일인을 파견했다. 독일 예나의 초라한 가정에서 태어난 쿠르트 운겔은 대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1903년 무일푼의 이민자로 브라질에 왔던 그는 곧 상파울루 주 내륙에 사는 더럽고 가난한 난데바-과라니 족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 그는 뛰어난 독학 인류학자이자 원주민 권리의 옹호자가 되었다. ... 과라니족은 이 조용한 독일인을 좋아했고 그를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은 밤새 계속된 정교한 의식을 열어 그에게 니무엔다주('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숲 뒤로 태양이 떠올랐을 때 햇살은 흰 피부임에도 불구하고, 멸족 직전의 부족의 불행을 2년간 함께한 과라니족의 새로운 동반자를 환하게 비췄다.' 476~477쪽


아마존을 사랑하고 말았던 소박한 탐험가들. 식물학자들의 이야기에 할애한 5장 '자연학자의 낙원'이 나는 가장 감동적이었다. 저 소박한 문장들이 내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를 지금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예수회원의 예상은 이보다 더 정확할 수도 없었다. 경쟁자들을 제거하자 포르투갈인들은 수세기에 걸쳐 아마존 주민들을 잔혹하게 착취하는 일에 착수했다. 처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적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그렇게 크나큰 해를 끼친 적도 없었다. 몇천 명의 식민지인들이 아마존 강 본류의 그 지류 주변으로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인간들을 점진적으로 말살했다. 121쪽


수백 년 동안 아마존을 지배한 포르투갈인들의 행태에 치가 떨렸다. 다 읽고 나서 선배에게 말했다. "포르투갈 사람들 아마존 원주민들한테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뭔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선배는 수백 년 전의 일이니 아마 책임도 사과도 없었을 거라고 대답했다. 


훌륭한 구성과 복잡하지 않은 서술, 흠 잡을 데 없는 번역, 성실하고 풍부한 자료, 생생한 묘사가 담긴 역사 책을 읽는 일은 그 자체로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한국 사람들이 흔히 좋아하는) 지중해, 로마사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역사든 훌륭한 텍스트로 되어 있기만 하다면 우리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작든 크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읽던 며칠의 밤은 신기한 시간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아마존의 5백 년 역사와 나의 삶이 구체적인 쓸모로 관계 맺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이 책을 읽었던 나의 시간을 '쓸모가 있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사회, 우리의 시대가 거기에서는 '아무 쓸모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던 그 시간이 내게는 진정으로 평화로웠을까. 내 삶의 '쓸모'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시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할 필요가 없었다. 나의 직업, 나의 외로운 하루들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이 숱한 인물들의 실제 삶을 따라다니면서, 아마도 평생 가볼 일 없을 머나먼 땅의 숲과 강을 상상하기만 하면 되었다. 나의 삶과는 어떤 관계도 찾을 수 없는 오래전의 일과 사람들의 삶을 읽는 일이 소설보다 더 큰 위안을 주었다. 세상이 내게 요구하는 효율과 생산성, 계발을 가장 우아하게 거절할 수 있는 몸짓, 소심하지만 근본적인 저항. (정말로 소설 같은 건 비교가 안 되었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훌륭한 소설들은 나의 삶을 다시 보게 하고, 새로운 언어로 재발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소설은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삶을 두 번 살게 했다. 나의 삶 같은 걸 굳이 다시 보게 만들었다. 소설이 내게 하는 일은 그래서 피곤하고 대체로 괴롭다.) 내 삶의 더 많은 평화를 위한 기도의 시간. 




아마존

저자
존 헤밍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3-03-22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아마존 토착 원주민들의 태곳적 확실성과 상대적 평온함,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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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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