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강상중, 현무암 지음 |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원작 2010년)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 등의 그 강상준 선생이 공저로 쓴 책이다. 본래 역사학자시다. 대선을 앞두고 열기가 고조되는 때를 맞추어 출간되어 꽤 많이 팔렸다. 내용은 교양서보다는 아무래도 학술서에 가까운데, 표지와 본문을 대중서로 잘 꾸몄고 300쪽에 못 미치는  적은 분량인 점이 더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더구나 부록의 주요 '인물 약전'과 '연표'는 20세기 초중반 조선과 일본사에 꽤 유용한 자료이다. '인물 약전'의 몇몇 일본인에 대한 설명은 웹에서 찾을 수 없는 것도 적지 않아 보였다. 


부제는 출간 당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의식한 결과물이다. 박정희와 만주국의 연결 고리가 무엇인지 상세히 분석하는 내용을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이 책은 그 연결 고리를 분석한다. 박정희 개인이 만주국에서 만든 인맥이 전후에 그의 생명을 구했고, 정치인으로서의 복권도 가능하게 했다. 또한 박정희는 만주국의 건설과 태평양전쟁을 이끈 일본의 주요 군인들과 경제 관료들의 세계관을 상당 부분 공유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유신 정권의 대중 동원 정책 - 새마을운동 같은 것, 초중등학교의 대다수 정책은 대부분 1940년대 황국신민화 정책과 만주국을 답습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실증적으로 완벽히 검증하기 힘들고 따라서 완벽히 검증되지 못한 박정희 개인의 세계관, 경제 관료와 주요 재벌 기업이 결합된 국가경제 통제 체제의 외양,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동원 정책 등의 몇 가지 측면에만 국한해서 다루고 있다. 그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국이라는 기괴한 체제를 낳기까지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과 사건, 주요 인물들인 군인과 관료,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세계관의 내용과 그것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에 있다. 이 내용이 책에서 전체의 절반이 넘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텍스트의 측면에서 이 책의 중심은 박정희와 전후 한국 현대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권력의 데카당스로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국책수행에 섬뜩할 정도의 집념을 불태우며 “돈은 걸러서 쓰면 그만이다”라고 호기를 부린 기시 노부스케는 권력의 악마적 화신 자체였다. 

그러나 이 지독한 마키아벨리스트야말로 전쟁 전에는 국가개조의 혁신관료로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고, 전후에는 보수합동을 낳은 주인공으로서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오름과 동시에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의 틀을 만들고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주도했다. 10쪽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기시 노부스케이다.(기시 노부스케, 1896년~1987년.) 그는 전쟁으로 치달았던 1930-1940년대 일본의 엘리트들의 세계관, 국제 정세에 대한 관점과 판단, 일본이라는 국가의 체제에 대한 비전, 그들의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 등을 상징하는 관료이자 정치가였다. 저자들은 학술서답게 지나친 해석과 가치판단은 배제하면서 사료를 근거로 평가한다. 덕택에 기시 노부스케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있어 뜨겁고 비장한 어조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오히려 저자들은 기시 노부스케가 이룩한 것들, 예컨대 전후 일본 사회에서 중산층의 형성하게 한 복지 제도의 도입, 군부 세력을 견제하고 의회의 정당 체제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정치인으로서 활약했던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표하기도 한다. 


지난날 만주국 상공정책의 선두에 섰던 무렵부터 기시의 머릿속에는 군부의 지원에 의지하면서도 군부독재에 대항할 정치력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 “내 결론은 군부만으로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모총장 몰트케가 세운 전략이 실패했을 때 독일은 무너졌다는 것이 내 관점이었다. 군부가 실패했을 때, 그것을 커버할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 군부의 독재를 억제하기 위해서도 군과는 별개의 강력한 정치력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기시 노부스케 회고록>, 201쪽에서 재인용.) 


기시의 기본적인 사유양식과 그것을 지탱하는 신조에서 진정한 단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시는 전쟁의 시대, 평화의 시대 그 어느 쪽이든 각각 나름의 방법으로 국가의 안위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가에 의해 지도된 혁신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285쪽


책의 초반부에서는 기시와 같은 일본의 지식인 청년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사건과 일본 지식인들의 담론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그 결과 훗날 그들은 만주를 '생명선' 삼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에 일본의 패권을 실현하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저자들이 파악한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이 청년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시대였다고 본다면, 그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고 남은 시대의 각인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세계역사상 가장 중대한 시기를 구분하는 유럽 전쟁의 발발’과 그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의미했다. (...) 미증유의 세계전쟁을 통해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급격하고도 신속하게 발전하고 사회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사회운동의 대두로 인해 국가의 존속이 위험에 처하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27쪽


기타 잇키의 <일본개조법안>이 기시의 영혼을 뒤흔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것이 일본의 국가개조와 ‘아시아 방책’을 처음으로 연결한 데 있었다. (...) 그것이 국체론을 전면 부정하는 한편 천황의 존재 근거를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가철학에서 찾고, 나아가 국민을 신민의 멍에로부터 해방시켜 근대적 의미의 ‘네이션’으로 자리매김한 데 있었다. (...) “천황대권에 근거를 둔 국민의 직접행동, 테러리즘을 수반하는 쿠데타”에 의한 국개조를 도모하려 했던 점이다. 32~33쪽


기획원을 본거지로 군부 막료층과 손잡고 고도국방국가로의 개조를 담당할 이들 혁신관료 그룹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젊은 시절에 “일반적 풍조로서의 마르스크-레닌주의적인 사회과학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 요컨대 그들에게 개개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법칙 아래 운동을 완성하는 사회의 구조 또는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그 공학적인 지도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전반적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치의 개막을 의미했다. 31쪽


만주국에서 활약하고 전쟁 수행을 담당했던 일본의 경제 관료들이 보여준 제도 설계 능력과 업무 수행 능력을 접하면서 적잖게 놀랐다. 이들은 원 없이 자신의 꿈을 펼친 역사상의 드문 엘리트 집단이었다. 아래의 마사요시 같은 인물은 그리 많지 않은 분량으로 다뤄지지만, 대체로 격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과 일본의 좌우 지식인들과 비교할 때 그의 안목과 식견(혜안)은 정말로 놀랍다. 


미야자키(미야자키 마사요시)는 좌와 우를 불문하고 혁명과 그 후의 계획경제에 대해서 자칫 과대한 평가를 내리는 일본의 지식인이나 학자, 절널리스트, 정치평론가 등과는 달리 그 실정을 냉정하게 관찰하며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이 러시아의 특수한 역사적 사정에 기초한 것임을 적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미야자키는 사회주의혁명을 통해 실시하게 된 소련의 계획적 통제경제 속에서 일본의 국가개조 모델을 찾아내려 했다. 165쪽


그와 함께 일본 사회가 어떻게 해서 만주라는 땅을 일본의 '생명선'으로 여기게 되었는지를 담론과 단어를 중심으로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분석한다. 여기서 '심상지리(imaginative geography)'라는 개념이 소개된다. 나는 한 사회의 개념의 지형도라고 이해했다. 저자들은 당시 일본 국민들의 제국에 대한 관념, 심상지리가 변화하고 그것이 개념어로 등장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그들이 보기에 결정적 계기는 바로 러일전쟁이었다.(동아시아 인들이 서구 열강과 전쟁을 벌여 명백히 승리한 최초의 사건.) 현실의 사건과 관념의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러일전쟁의 기억에 더해 제국 이데올로기의 성장으로 일본인들의 머릿속에서 만주는 일본의 ‘생명선’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조선과 만주는 별개의 '만한'에서 하나의 지역으로서 '만선'이 된다. ‘만선’이 하나의 심상지리로 일본 국민들의 관념으로 자리잡는(고착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의 사회적 풍경(기사, 단어, 학술 연구 등)을 저자들은 탐색한다. 


‘생명선’이라는 슬로건은 1930년대 제국의 신화를 형성하는 데 가장 매력적인 단어였다. 그것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요소를 낡은 이야기에 동화시키고 제국 이데올로기의 재구축에 걸맞은 역할을 맡음과 동시에 만주국이라는 ‘왕도낙토’의 이상을 그려볼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 이 전쟁(러일전쟁)의 기억이야말로 일본 국민이 제국을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일부로 여기고 그 영광을 축복하게 되는 국민적 이미지의 원천이었다. 44쪽


얼마 전에 읽은 브로샤트의 <히틀러 국가>는 독일 나치즘 체제 연구의 획기적인 저작인데, 그의 연구를 시작으로 형성된 나치즘 연구의 한 흐름을 '기능주의적 관점'으로 부른다. <히틀러 국가> 이후의 나치즘 연구는 모두 이 저작에 대한 수정, 보완, 비판, 발전의 결과물이다. '기능주의적 관점'에 대한 주요한 비판 중 하나가 '의도주의적 관점'인데, (내가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는) 나치 지도자들, 당대 독일 사회의 개인들의 반유대주의 같은 세계관,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 대량학살의 더 중요한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많은 역사 연구가 그렇듯 하나의 주장이 주류가 되고 뒤이어 반대 주장이 등장할 때, 두 주장 모두 실증적인 사료와 균형 잡힌 분석으로 뒷받침된다면 진실은 둘의 '절충주의적 관점'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나치즘 연구의 역사가 바로 그렇다. 


이 책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제목과 부제가 말하듯 의도주의적 관점에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 한국과 일본의 주요 엘리트인 군인, 경제 관료들의 세계관과 행적을 추적하는 데 주요한 부분을 할애한다. 하지만 전쟁으로 치달은 일본 제국주의와 그 산물인 만주국의 체제를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대목도 찾아볼 수 있다. 


‘국체’가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하더라도 ‘국체’가 아닌 것에 맞서서 준엄한 권력체로서의 배타적 폭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식민지에서의 황민화정책은 이러한 폭력성에 의해 전개되는 것인데, ‘국체’ 내셔널리즘의 ‘공소함’은 안팎의 ‘명징’하지 않고 불투명하고 이질적인 ‘타자’와 접할 때 좀 더 선명하게 떠오르며, 동시에 그것이 이질적인 문화나 민족, 인종을 끌어들였을 경우의 알력과 상극을 초래한다는 딜레마도 심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선일체’나 ‘오족협화’라는 식민지 이데올로기에 파탄을 가져오게 된다. 112쪽


‘오족협화’와 ‘내선일체’를 강조하면 할수록 양자가 서로 어긋나는 현실이 부각되기 때문이었다. 재만 조선인의 국적 문제는 만주국의 성립으로 인해 더욱 복잡해질 따름이었다. ‘오족협화’ 아래에서 조선인을 관리하려는 만주국의 국적법은 민족으로서 분리할 수 없는 재만 조선인을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고자 하는 조선총독부의 방침과 대립했던 것이다. 113쪽


깔끔한 서술과 구성, 명료한 주장, 적재적소에 과잉되지 않게 언급되는 사료, 도판과 부록을 포함한 편집 요소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제목과 부제는 아주 약간의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키지만 흠으로 지적할 만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의 후반부에 있는, 유신 정권기의 주요 역사적 사건과 산업화 정책에 대한 분석 역시 필요한 내용이 적절히 요약되어 있어 유용해보였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저자
강상중, 현무암 지음
출판사
책과함께 | 2012-09-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만주국이 낳은 요괴와 독재자, 두 인물의 발자취를 추적하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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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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