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엮다 舟を編む

미우라 시온 지음 |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사전을 만드는 일에 대한 이야기. 직업적으로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상한 대로 마음에 박히는 문장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이 만드는 책은 사전이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인쇄물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인쇄물들을 만드는 모든 편집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말은 사회 어딘가에서 쉼 없이 생성하고 변형하고 소멸한다. 한 사회의 말에 일어나는 일을 동시대에 완전히 따라잡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 말을 한다. 하나의 마음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이 사용된다면, 혹은 하나의 말을 두고 서로 다른 마음을 떠올린다면, 마음은 길을 잃고 헤맬 것이다. 사전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든 것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적어도 당분간이라도 마음과 말을 정하고 정리해주려는 시도이다. 너의 말이 담고 있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나의 마음을 무엇으로 말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래야만 우리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36쪽


한 권의 사전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한 순간, 말은 다시 꿈틀거리며 빠져나가서 형태를 바꿔 버린다. 사전 만들기에 참여한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가볍게 비웃으며, 한 번 더 잡아 보시지 하고 도발하듯이. 마지메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운동하는 언어가 지니고 있는 방대한 열량이 한순간에 보여 주는 사물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건져 내 문자로 옮기는 일이다. 92쪽


"요리를 먹고 난 소감으로는 복잡한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맛있다' 한 마디나 다 먹고 났을 때의 표정만으로 우리 요리사는 충분히 보답 받았다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수업을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답니다." ... 뭔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다. ... 말이라는 낙뢰가 떨어져 비로소 모든 것은 생겨난다. 사랑도, 마음도. 말에 의해 만들어져 어두운 바다에서 떠오른다. 270~201쪽


개인적으로 좀 싱거운 작품이긴 했다.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고, 인물들의 마음은 복잡하지 않으며, 목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동종 업계 종사자가 아니었다면 책을 읽고 나서 무척 아쉬워했을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좀 더 길게 다뤄주었다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아쉬움이 완성도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이런 소설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썼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올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글을 쓰다 오만 생각이 떠올랐다. 다 쓰다가는 한없이 길어질 것 같아 다른 포스트에서 이어보려고 생각 중이다. 오늘은 일단 자고.




배를 엮다

저자
미우라 시온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3-04-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사전이라는 배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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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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