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림보

김한민 지음 | 워크룸 프레스 | 2012년


<내 친구들에게>. 이런 글을 써서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 만화책이다. 사실 삼분의 일쯤을 읽고 탐탁지 않아 쳐박아두었다. 피해망상, (작가) 자신은 다르다고 믿는 오만, 림보족 아닌 세상 모든 이들이 "바퀴족"이며, 그런 편가르기, 무기력한 삶들에 숨겨진 슬픔, 비극, 그들의 성실, 노력을 폄하하고 경멸하는 것 같아 한마디로 재수가 없었다(당신은 림보족인가? 당신들 모두 조금씩은 "바퀴족"이지 않는가?). 


하지만 어떻든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으므로, 끝까지 읽긴 해야지, 라고 마음먹고 몇 달이 지나 다시 책을 손에 쥐었다. 차근차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작가는 우리의 기계적인 삶,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삶, 유흥가의 숱한 속물적인 삶, 보이는 것만이 중요한 세계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그러지 않으려는 '림보족'의 험난한 탈출기를 그린다. 림보족은 모두 상처받고 패배한 자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무능력한 자들이라고 나는 인정한다. 이 만화가 그렇듯이 더 잘 쓴 것, 더 잘 그린 것은 나의 마음을 건드릴 줄 안다. 림보족의 멤버들은 하나둘 "바퀴족"의 삶에 투항한다. 작가는 그것을 배신으로, 패배로 그리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겠다. 당신이 만화를 그리듯이 노력하는 자들은 우리 사회에 언제나 있으며, 그들은 사실 이 사회에서 탈출하지 않은 채 "바퀴족"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바로 위의 두 컷, "젠장! 18놈들"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 또한 울컥한다. 저 앞에 고꾸라진 새 한 마리, 병아리 하나를 위해 "18놈들!"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심보선 시인은 이렇게 썼다. "나는 간혹 생각한다. 나름대로 버텨왔다. 언제까지 더 버틸 수 있을까? 나처럼 나름대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또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고 싶었다. 나와 타인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별 다른 인생의 목적 없이, 다만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존재하는 것을 이 세상은 허락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만인을 그저 생존하는 기계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존재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 만인의 기계화에 저항하며 그냥 존재하고 싶은 소심한 사람들의 치열한 상상력 투쟁기. 그 초라하고 서글픈 실패담. '카페 림보'는 지금껏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싸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 그 싸움에서 계속해서 지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잔존하는 희망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나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시인 본인이 말하듯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산다지 않는가? 그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가? 그냥 존재한다면 싸움에서 질 수조차 없지 않는가? 우리에게 "이 시대에 잔존하는 희망이라는 사실"을 안겨주는 이들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싸우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내가 지금 꼬투리를 잡고 시시콜콜 따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 당신도, 작가 본인도, 당신들은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계속해서 쓰고, 그리고, 상상하고, 타인과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그러고 있는 "바퀴족"이다. 


* 여기까지 쓰고 다시 읽다 글을 비공개로 해두었다. 왜 나는 작가가 자신을 림보족으로 여길 거라 생각했을까? 단지 이것은 누군가가 그린 것이며, 거기에 그린 자 본인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어쩌면 작가는 패배한 자, 마지막에 가서 림보족을 배신한 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찔려서 그런 거였다. 




카페 림보

저자
김한민 지음
출판사
워크룸프레스 | 2012-11-15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소개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들의 이름, 림보. 바퀴족이 점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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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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