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2008년)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소설집 |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역자 후기가 참 근사하다. 포터의 소설들이 갖는 몇 가지 특징들, 그것이 왜 우리에게 매력적인지, 더구나 역자로서 알 수 있는 원서의 문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풀어놓는다.
김영하 씨 팟캐스트 한 번 나오고 나서 판매가 급상승했다. 어쨌든 좋은 일이다. 사람들이 이런 소설을 더 읽으면 좋겠다. 알라딘 백 자 평에서 누군가 말했듯 존 치버(읽어보지 않았지만), 카버, 라히리, 혹은 설터까지도, 몇몇 현대 미국 소설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앤드루 포터의 데뷔작인 이 단편집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우리 삶의 뭔가가 돌이킬 수 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38쪽) 뒷표지에는 김경주 시인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마지막 문장에 감탄했다. "이 픽션의 가장 강렬한 매혹에 대해 한 가지만 이야기하려면 나는 주저 없이 '배후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불안'을 만들어낸 작가의 집요한 편집력이라고 말하고 싶다."(강조는 인용자) '집요한 편집력', 작품을 읽기 전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무릎을 치고 싶은 말이다. 내게 '집요한 편집력'이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지, 무엇과 무엇을 씀으로써 쓴 것과 쓴 것 사이에 어떤 빈 것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능력으로 여겨진다. 저자 소개 글에서 저자가 평소 "『대성당』이 아니라 「대성당」의 화자를 좋아"한다고 전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앞의 겹으로 된 기호는 카버의 소설집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뒤의 홑으로 된 기호는 그 소설집의 표제작 「대성당」을 말한다. 이 멋진 소설집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성당」은 유독 감동적인 단편이다. 카버의 자취를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한 거였다.
주위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나를 포함해 세 명이 있는데, 각자 좋아하는 작품이 달랐다. 한 사람은 「강가의 개」를, 나는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다른 친구는 세 쪽짜리 단편 「피부」를 꼽았다.
다시 읽고 나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정말 좋았다. 이 단편은 앞의 것들과 달랐다. 앞의 작품들에서는 때로 튀는 문장이 있었다. 서사든 감정이든 인물의 완성이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피치 못하게 삽입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문장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번에 카버가 생각났다. 이 단편 역시 음미해보면 여전히 카버를 생각나게 하지만(예를 들어 짧은 단문과 수사를 자제하는 것), 읽는 동안에는 카버와 닮았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흡입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쁜 말이 나올 수 있는 소설이어서 결국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또 와인을 마시고 웃으면서 조그만 부엌에서 그의 곁에 앉아 있을 때 내 마음이 은밀하게 떨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104쪽) 「외출」에서는 이런 느낌이 있었다. 소설이어야 한다는 혹은 하겠다는 의지 같은 것을 좀 더 단념하고, 힘을 빼고 썼다는 느낌. 그래서 옛일을 회상하는 일기처럼 읽히기도 했다. 이야기를 쓰는 이에게 무엇을 더 하겠다는 의지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폭풍」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어머니의 눈은 자신의 삶에는 기쁨보다 실망이 훨씬 많았다고 말하고 있었다."(234쪽)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나의 현재로 미루어볼 때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까지도.
"나는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 후 개수대 앞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 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 가장자리에서 걸어 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코네티컷」, 282쪽)
상실한 사람. 잃은 사람. 다시 잃는 일을 두려워하는 사람. 함부로 내딛지 못하는 사람. 걱정하고 걱정하는 사려 깊은 사람.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런 장면, 그런 사람, 그런 삶에 대한 생각뿐이다. 얼굴을 펴고 다닐 수가 없다.
* 저자 소개 글(표2)에 결정적인 오타가 있다. 내가 편집자였다면 책 받아봤을 때 혼자 조용히 깊은 신음부터 내뱉고 보았을 듯. 하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