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취미

closed 2013. 8. 23. 00:04


내게 취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심심한 날들, 재미없는 인간. 정말로 그런지 곰곰히 따져보았다. 있다면 있다. 회사에선 역사 책 사회 책을 읽고 만들지만 요즘 정작 집에서 읽는 것은 소설이다. 언제나 한가롭기 그지없는 나의 주말마다 주로 집 앞 까페에 나가 소설을 읽는다. 최근에 다 읽은 앤드루 포터 단편집에, 레이먼드 챈들러와 제임스 설터의 소설, 브루스 채트윈의 여행기를 읽고 있다.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은 출퇴근 길에 짬짬이 읽는다. 카버를 포함한 현대 미국 소설들과는 쉽게 멀어지지 않는다. 


나에게 취향이 비슷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 아, 나한테 취향이란 것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취향이지만, 내게 유난히 아름다운 이야기와 인물과 세계가 있으며 그저 반하게 되는 얼굴과 뒷모습과 목소리가 있다.


다시 한 번, 취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썼듯이 "사랑할 사람이 없는 독신자가 사물마저 사랑하지 못할 때"의 삶을 지금 살고 있다. 애호가(덕후)가 되는 일은 좋은 덕목으로 대접받는다. 나는 어느 저자나 음악가, 화가, 장르의 소식에, 누군가의 새 작품에 특별히 열광하지 않고 남들만 한 관심도 없다. 


그나마 익숙한 대로 새로운 문화 생산물을 접해보기로 했다. 클래식을 들어보기로 했다. 내 취향을 아직 모르고 아는 음악도 음반도 없으니 사람들의 추천대로 라디오 방송을 먼저 듣고 있다. 정만섭 씨가 진행하는 <명연주 명음반>을 '다시 듣기'로 듣는다. 존나 어지러운 마음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요즘 이 시간이 귀중하다. 낮에 다 처리하지 못한 일거리를 싸들고 퇴근해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몸을 씻고 거실에 불을 끈다. 얼마 전 집 앞 골목에서 주워온 팔걸이의자에 앉아 아무 날이나 골라 방송을 튼다. 새하얀 모니터를 앞에 두기도 하고 그저 멍하니 담배를 태우기도 한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글을 쓰든 멍을 때리든, 불 끈 나의 집에 앉아 사만 원짜리 스피커로 이야기를 알 수 없는 음악을 듣는 시간을 하루 종일 기다린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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