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웨이>, 산책

closed 2013. 9. 13. 00:09


<사이드웨이Sideways>(알렉산더 페인, 2004년)를 다시 보았다. 블로그에 남겨 놓았듯이 오 년쯤 전에 처음 보았던 영화다. 사는 동안 간간이 생각나곤 했다. 네이버로 검색해보니 관련 리뷰며 페이지가 많다. 와인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영화여서 그런가 보다. 나는 와인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어떤 사람은 결말이 해피엔딩이어서 더 좋다고 했다. 오늘 다시 보기 전까지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이 그리 해피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마일스(폴 지아매티)의 표정이 아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다시 보면서도 참 좋았다. 결국 그 표정들이 좋았다. 이입되어서 그런 거겠지. 군데군데 이입될 수밖에 없어서. 주로 재즈곡이 흘러나오며, 대사 없이 음악이 소리를 채우는 장면이 많다. 전체를 흩뜨리지 않으면서, 캘리포니아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폴 지아매티. 


간만에 동네를 휘적휘적 걸었다. 산책하는 동안 언제나 기이한 시간에 휩싸인다. 밤에 나는 걷는다. 가능하면 모르는 길을 걸으려 한다. 내 집이 어디쯤 있는지 방향은 파악한 채로 휘적휘적 걷는다. 조용하고, 바람이 불고, 차가 다니고 사람이 오간다. 많은 집들, 집에 이어 집들이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있다. 어딘가에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고 있고 나는 여기를 이렇게 걷는다. 내가 지금 여기를 이렇게 걷고 있는지를 사람들은 모른다.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산책자들, 우리는 이 시간 서로의 존재를 유일하게 아는 산책자들, 이 시간으로만 유일하게 동료가 되는 사람들. 안녕. 안녕. 잘들 사시죠. 어떻게든 살고 계시죠. 저도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이 한가로운 시간, 이 기이하게 조용한 시간, 나의 하루에서 가장 평온한 시간. 집에 돌아와 보내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심심하고 외로운 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았다. 산책하는 동안 일종의 위화감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살아 있음의 감각 같았다. 깨어나는, 의 감각? 아직 내게는 기이하다는 말만 가능하겠다. 아, 내가 지금 살아 있구나. 이것이 나의 시간이구나. 


불을 다 끄고 담배를 태우며 <명연주 명음반>을 다시 듣는다. 다 못 들어도 상관없고, 두 시간 내내 귀 기울이지도 않는다. 대개는 그 시간 동안 일기를 쓰고 일기를 마무리하면 모니터를 덮고 그냥 가만 앉아 있는다. 생물학적으로 내게 주어진 몇 가지 기능을 가지고 머릿속에서 하나의 텍스트를 그리려 애를 쓰기도 하고, 저 뒤에 숨겨진 음을 추적해보기도 한다. 그래 봤자다. 그렇게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불 끈 집에 가만 앉아 담배를 태울 태우는 시간. 이런 시간들이 어쩌면 종교적 믿음이 없는 내게 일종의 기도 같은 것은 아닐까.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 수고 많았어. 



Posted by 권고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