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일하기 전의 나는 국제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끊이지 않는 다툼 정도만 신문으로 접할 뿐, 신문 국제면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간간이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한국인들은 국제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다.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요즘은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다. 아 세상은 실제로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지구 저편 소말리아에서는, 인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원인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사회과학적으로. 하지만 트위터나 주위 친구들을 봐도 그렇고, 한국의 주요 인문서 독자들, 진보파 시민들은 국제 문제에 여전히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들뢰즈, 바우만이니 뭐니 하는 유럽의 철학자들의 말에 더 열심히 귀 기울이는 듯하다. 우리 스스로의 삶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이해를 위한 말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건가, 근거 없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오히려 한국에서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전하는 데 열심인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인 것 같다. 간단히 생각해 보면 그럴 법하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공동체의 무엇이 강제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것이 말이든 제도이든. 정치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옹호하고 지지할 수 있는 영역에 충실해야 한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는 개인이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재검토해야 한다. 그래야만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로 책임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들은 인생에 대해 이미 모종의 판단을 내린 사람들 같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면의 방황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의 세계상, 그 작동 원리, 우리 삶에 실제로 개입하는 정치경제사회적 현상들의 모습 같은 것인가 보다, 이 역시 근거 없는 추측일 따름이다. 


이 책은 아프리카, 아시아(특히 남아시아 인도-파키스탄), 멕시코와 미국의 현장을 직접 조명하는 르뽀이다. 내전,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 멕시코의 갱단과 이민의 문제에는 냉전의 잔재, 국가의 부재 등 온갖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오늘날 그 모든 문제를 부추기고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핵심은 기후 변화, 즉 지구 온난화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수단 다르푸르 분쟁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사태의 뿌리를 거슬러 가면, 여러분은 분쟁 아래 잠복한 훨씬 복잡한 요인들과 그것들이 맞물려 작동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양한 사회 정치적 원인들이 있는 한편으로, 분쟁은 생태 위기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생태 위기는 많은 부분 기후 변화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주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적절한 개념을 제공한다. 북방 선진국이 남방 후진국의 파탄에 대처하는 태도를 '무장한 구명정의 정치학'이라 이름 붙이고, 현실적 대응 방식으로 '대게릴라전'을 들며 그것이 사회를 어떻게 파탄내는지 설명한다. 현실과 개념 사이에서 균형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현실에 조금만 치우쳐도 온갖 풍경을 목도할 뿐 그다음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개념에 치우치면 지나치게 어렵고 재미가 없어진다. 

특히 재밌던 대목은 인도 낙살라이트 운동. 진짜 심각한 문제인데 한국에는 제대로 된 책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출판사 블로그에 가 보니 낙살라이트 운동에 대한 글이 한 편 있다. 얼마 전 읽은 판카즈 미시라의 <거꾸로 가는 나라들>에서도 이 문제가 비중 있게 언급되어 있다. 이 정도 되는 글마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은 뭘하고, 학계는 뭘하나 모르겠다. 



터렌스 리온세스와 아흐메드 I. 사마타르가 말하는 것처럼 "국가가 붕괴하면 광범위한 영역의 사회적 유대와 결합도 붕괴될 수밖에 없다. 시민 사회가 국가의 토대가 되는 지지와 요구사항을 만들어내지도, 결집시키지도, 분명하게 표현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없으면 사회는 해체되고, 사회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가가 생존하지 못한다." 150쪽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많이 쓰이는 사제 폭발물처럼 낙살라이트의 지뢰도 여러 면에서 효과적이다. 전술적으로, 지뢰는 경찰을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는 역할을 한다. 심리적으로, 폭발물은 적을 압박하여 사기를 꺾는 효과가 있다. 정치적으로, 지뢰는 대게릴라전 세력과 그들이 통제하려는 주민들 사이에 사회적인 장벽으로 기능한다. 254쪽


이런 상황에서 (대게릴라전의) 전략과 전술은 개인 심리, 종교, 연령 구성, 의식, 전통, 가족 간의 유대, 경제 활동, 장소에 대한 애착 등등, 말하자면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사회가 목표물이며, 그만큼 사회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대게릴라전은 그것이 사회 관계망을 공격하기 때문에 특히나 파괴적이다. 50쪽


온갖 결점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권장할 만한 요소가 많으며, 지킬 가치가 있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세계 문명이라고 하면 대체로 자본주의 세계 경제를 말한다. 온갖 착취와 불평등의 원인이지만 한편으로 놀라운 부와 기술을 탄생시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정말로 우리는 이런 자산과 역량을 재배치하고 재분배할 방법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379쪽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

저자
크리스천 퍼렌티 지음
출판사
미지북스 | 2012-08-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유혈과 국가 붕괴를 취재하다!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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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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