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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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엔도 슈사쿠 (민음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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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누군가 쓴 서평을 읽은 적도 없다. 순전히 제목과 저자 이름이 마음에 들어 골랐다.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점도 참고 요인이었다.

90년대 초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장기 불황이 닥치기 전까지, 70-80년대 일본 경제는 풍요로웠다. 종신고용, 폐쇄적인 조직 문화, 정치적 보수주의 등이 그 시기의 특징이었다. 그 안에 60년대 서구 사회에 이어 정신적 탈출구를 찾으려는 일본 청년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 흐름 중 하나가 아사하라 쇼코의 옴진리교 이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주민 다수가 미야마타 병으로 고통 받았던 바닷가 도시 출신이다. 그는 20대 때 인도를 여행한 적 있다. 당시 많은 일본 청년들이 인도로 향했다. 『황천의 개』의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인도로 향한다. 우연히 같은 패키지 여행에 참여한 네 사람. 모두 다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여행 경로 중 갠지스강 근처 바라나시에 머무르며 그들은 오랫동안 품어온 것을 자기 나름으로 풀어 놓는다. 시신을 화장하고 남은 재가 녹아든 강물에서 입을 헹구고 목욕하는 사람들을 보며.

작중 인물 미쓰코는 한 프랑스 소설을 잊지 못한다. 그 자신이 작품의 여주인공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작품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의 『테레즈 데케이루』다. 범우사판 『떼레즈 데께루』라는 책이 있다. 3년 전 프문과 수업을 교양으로 듣다 읽었던 작품이다. 소설가 최윤 선생님이 학과 교수로 수업을 이끌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아무 일 없어 보이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운 증오, 회한, 포기 같은 감정을 쌓아가는 여인. 아이를 낳고, 돈을 벌고, 평판과 체면에 신경 쓸 뿐인 보통의 남편을 독살하려다 실패하는 여인.

<깊은 강>은 인상적이지 않은 작품이다. 내게 삶이란 아직 긍정할 만한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마음이 있다. 나는 나의 일상에서,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것들로부터 위로 받고 싶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휙 내팽개치고 떠나고 싶지 않다. 지금 당장 읽을 수 있는 책, 지금 당장 쬘 수 있는 볕, 지금 당장 만날 수 있는 친구, 지금 당장 만질 수 있는 온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싶다. 사실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내 안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믿기지 않게도?

 

“내가 생각한 건……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불이(善惡不二)로, 인간이 하는 일에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거꾸로 어떤 악행에도 구원의 씨앗이 깃들어 있다. 무슨 일이건 선과 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서, 그걸 칼로 베어 내듯 나누어선 안 된다. 분별해선 안 된다. (…)” 300쪽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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