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소설집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소설 뒤의 해설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래서 안 읽었다. 슬쩍 훑어보았는데, 슬쩍 비치는 말 몇 개가 영 재미가 없어보였다. 안 읽으련다. 실은 그녀의 소설도 그랬다. 그렇게 썩 그리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작년 여름 출간 당시, 그녀의 소설이 참 좋다는 지인들의 말을 온라인에서 가끔 접하곤 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김애란 씨야. 그럴만하지. 나도 조만간 읽어봐야지.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에 열광했었고 (<침이 고인다>는 족히 다섯 권은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했으며) 생전 가본 적 없는 저자 강연회에 무작정 찾아가 (사실 학교 학생회관에서 열리기도 했었지만) 작가님 좋아합니다 고백했던 내가, 그녀의 소설집을 읽고 음, 별론데...?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절반쯤 되는 작품은 여러 책에서,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나, 연작소설집 같은 책에서 이미 읽었던 데도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감상은, 앞뒤 다 자르고 무책임하게 말하자면 시시하다, (좀) 맥빠진다, (영) 성에 안 찬다, 였다. 20~30대 도시 독신자들의 일상, 그들의 하루를 담은 문장들은 여전히 재밌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다. 성에 안 차는 거. 그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도, 인물의 배경을 먼저 들었을 때, 이건 좀..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물론 그런 아이가 실제로 있을 수 있고, 소설은 있을 법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쓸 수 있지만, 이건 좀.. 책 속에 있을 문장들과 별개로, 소설의 배경만으로도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여태 읽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가, 신뢰할 만한 친구가 이 책 참 좋다며 내게 추천을 한다면 읽을 일이 있을 것이다.
그녀보다는 내가 변한 것 같다. 그사이 일도 하게 되었고, 읽는 글의 양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고, 읽는 글의 종류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이 글 혹은 문장에 관한 감각의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심 그런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꽤 오랜 기간에 걸쳐 발표된 단편을 모은 책이다. 이것이 정당한 바람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글이 정말로 좋았다. 그녀가 좀 더 성에 차는 소설을 써주었으면, 하는 오만하고 무례한 바람을 아직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언제나 말이 고파 크게 벌어졌던 눈. 지구 축처럼 - 사람을 향해 15도쯤 기울어져 있던 마음. 133쪽,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아니, 그보단 아예 두려움 근처에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상책이라고. 진짜 공포는 그렇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말이다. ...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254쪽, <호텔 니약 따>
그리고 그때 저를 위로해준 건, 제가 직접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누군가의 체온이었어요. 욕망이나 쾌락은 그다음 문제였지요. 어쩌면 사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기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만하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면서요. 301쪽, <서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