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찾아서 - 암흑의 땅 서아프리카의 비극 그리고 비밀사회

Chasing the Devil(2011년)

팀 부처(Tim Butcher) 지음 | 임종기 옮김 | 에이도스 | 2012년 


인터넷 서점에서 분야별 신간 목록을 살피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에이도스는 일인 출판사로 흥미로운 번역서를 주로 출간한다. 압도적인 표지, 매력적인 제목, “2011년 조지 오웰 상 후보작”이라는 카피까지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이십여 년 간년간 국제 분쟁 기자로 일해온 영국인이 서아프리카 지역의 두 나라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를 여행하며 쓴 논픽션이다. 국내 집필서에서는 이런 종류의 책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김재명, 김영미, 박노해 씨 정도가 당장 떠오르는 저자들이다.) 영어권에서는 심심찮게 베스트셀러가 된다. 모국인들에게 생소한 이국을 여행하거나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얻은 목격담에, 그 지역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약간의 사회과학적 설명과 대강의 역사 서술을 양념처럼 곁들인 글다. 최근에 우연히 이런 종류의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다. 인도 파키스탄의 근현대사가 현대의 풍경과 쓸쓸한 어조로 근사하게 어우러진 『거꾸로 가는 나라들』(판카즈 미시라 지음), 한 미국인 청년이 중국 오지의 시골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며 겪은 일을 기록한 『리버 타운』(피터 헤슬러 지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태평양의 외딴 섬외딴섬 이야기 『나우루공화국의 비극』(뤽 폴리에 지음)이 무척 재밌었다. 

사실 내가 다니고 있는 출판사가 이런 종류의 책을 자주 낸다. 한국에서 국제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열악한(안 팔리는) 분야이다. 어느 날인가 밥을 먹다 한국 사람들은 왜 나라 밖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이해하는 데 별 관심이 없는지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전까지 나는 그저 한국인의 특성으로 치부해왔는데 그는 다른 가설을 내놓았다. 한국인들에게는 식민 지배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서구에서 인류학 같은 것, 다른 사회를 이해하려는 지적 흐름 자체가 식민 지배에서 비롯된 제국주의적 관심에서 시작된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책 자체를 안 읽어서, 사회과학은 더 더 안 읽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안 읽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회사 책은 좀 많이 팔리면 좋겠다.)


이 책에는 네 줄기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첫째, 영국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의 여정과 그의 자취. 둘째,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의 근현대사. 셋째, 저자 본인의 개인사와 과거의 경험담. 마지막으로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여행. 

너무 많은 콘셉트가 해가 된 사례이다. 만약 내가 이 책의 편집자였다면 서아프리카 근현대사와 저자의 여행기에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저자에게 제안했을 것이다. 좀 더 많은 현지인 인터뷰를 넣고 서아프리카 근현대사와 이전의 연구와 다른 문헌을 참고하고 사회과학적인 분석을 곁들이자고 말했을 것이다. 물론 여행 전에 미리 출판사와 계약이 된 경우에 가능한 이야기다. 이미 본인이 콘셉트와 소재를 정해 원고를 들고온 상태에서는 어떻게든 많이 팔리도록 꾸미고 수습하는 수밖에 없다. 책은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각각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며 흥미를 돋우지 못한다. 수시로 인용하는 그레이엄 그린의 말이나, 자신의 여정을 그와 견주며 그의 생각을 짐작하고 때로 스스로 그러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나는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그레이엄 그린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국 아마존에서는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책들과 비교해보면 이 책의 문제가 좀 더 명확해진다. 저자는 겨우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랐던 것 같다. 자신이 직업 기자로 살면서 느꼈던 아쉬움, 위대한 소설가의 여정을 뒤따르는 문학적 호기심("이런 생각에 빠져 걸으니 어느 새 그레이엄 그린과 함께 거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을 직접 탐험하고 (심지어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까지 모두 담으려 했다. 그래서 저자는 두 달 동안의 도보 여행에서 보고 들은 아프리카의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꼼꼼히 기록하고, 그 지역의 근현대사를 요약하고 한 소설가의 전기적 사실을 수시로 언급하며,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숲속 비밀사회 포로(poro)(오늘날에도 여전히 제의 살인을 일삼는 서아프리카의 비밀 공동체. 여성들의 사회는 산데(sande) 혹은 분두(bundu)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할례 의식을 실행한다.)의 정체를 탐구하려 한다. 

서아프리카 숲속 비밀사회 ‘포로’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은 전체 구성에서 핵심 이야기이자 절정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속시원한 탐사라기보다는 개운치 않은 귀동냥에 가깝고 이전의 연구를 인용하는 정도로 그칠 뿐이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 두어 쪽 정도를 할애해 자기 나름의 해석을 들려준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정글에서 생존할 수 있는 최대의 가능성을 지식수호자들이 제시해준다는 점이다. … 만약 포로 내의 많은 사람들처럼 한 개인이 입문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을 받아들인다면, 제의적 이유로 비입문자들을 살해하는 일은 여러 면에서 우리처럼 요리해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일보다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원인 분석은 대체로 수긍이 가지만 결론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근대성(modernity)의 문제였다. 저자는 "현대에 들어 아프리카에 그토록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 이유는 부족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국가적 차원의 공공선을 창출하지 못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밀사회의 영향력이 강력한 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는 이들이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식민 국가든 피식민 국가든 근대 국가의 탄생은 이전의 사회 관계망을 무력으로 해체하면서 국가의 공적 권위를 안팎으로 확인받는 과정을 거쳤다. 서아프리카의 피식민 국가(시에라리온을 지배한 영국)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혹은 못했고, 국가가 부재한 상태에서 극단적인 폭력에 대처해야 했던 민간인들은 이전의 사회 관계망에 더욱 의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간간이 눈에 띄는 오탈자가 신경 쓰였다. 단순한 것이면 오히려 개의치 않았을 텐데 ‘그중’을 ‘그 중’으로 쓴다든가, ‘몇십 년’을 ‘몇 십 년’으로 쓴다든가 하는 것은 그저 실수라기라고 보기 힘들다. ‘그중’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사로 등재된 단어이고, 수와 관련해 쓰이는 ‘몇’은 의문의 뜻을 가질 때는 몇 십, 몇 백, 몇 천으로 쓰고(“거기 몇 백 명 있어?”) 막연한 수를 의미할 때는 몇십, 몇백, 몇천으로 쓴다. 이런 것은 편집자가 잡아내야 하고 대체로 편집자만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습하는 말인 것 같아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이런 책을 내주어서 고맙다. 나는 더 많은 말이 따라서 더 많은 책이 더 괜찮은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단, 책은 잘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편집자는 잘해야 한다. 


* <월간 이리> 8월호. 맨 마지막 문단에서 저렇게 써놓고서 보다시피 오탈자가 네 곳이나 있으며, 그중 하나는 퇴고 과정에서 발견했어야 할 결정적인 실수였다. 까페에서 확인하다가 쪽팔려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악마를 찾아서

저자
팀 부처 지음
출판사
에이도스 | 2012-11-02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영국의 대문호 그레이엄 그린의 발자취를 따라, 서아프리카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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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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