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몇 달만에 읽는 소설. 픽션. 그치만 사실 이 책들은, 소설이 아니기도 하다.(작가 소개글은 보통 편집자가 쓰는데, 북극 허풍담의 소개글은 정말 매력적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먼 덴마크 작가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한 번 읽고 나면 쉬 잊히지 않는다. 멋지다.)


"1년에 한 번 소포와 보급품을 싣고 오는 수송선이 문명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 통로인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16년을 지내면서, 그곳의 사냥꾼들과 겪은 놀라운 체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 하마터면 묻힐 뻔한 그의 걸작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어떤 뻔뻔한 책 장수 덕분이었다. 북극 사냥꾼들에게 장식용 책을 무게로 달아 파는 그가 요른 릴의 원고를 몰래 빼내 출판업자에게 넘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작품들이 출간되기 시작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작품 속 인물 중 한 사람, 안톤은 작가의 분신인 것처럼 보인다. 소개되는 삶의 이력이 대강 비슷하다. 이 놀라운 이야기들, 시트콤 같다가도 무시무시하게 슬프고 끔찍하게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그린란드 인근 지방에 대한 책을 읽었었는데, 하며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겨우 기억났다. 읽은 책이면 무조건 기록을 남기기로 한 게 이럴 때 도움이 된다. 


팔리 모왓 지음, 잊혀진 미래 http://gomacoma.tistory.com/385

그레이 아울 지음, 빈 오두막 이야기 http://gomacoma.tistory.com/405


두 권 다 아주 훌륭하다. 캐나다 북부와 북서부의 황야를 무대로 삼는다. 둘 다 논픽션이다. 팔리 모왓의 책은 특히 좋았는데, 편집이 많이 아쉬웠다. 그의 다른 책을 검색해 보니 돌베개에서 나온 <울지 않는 늑대>는 꽤 많이 팔렸고, 양철북의 <안 뜨려는 배>는 저조하다. 둘 다 무지 훌륭할 게 틀림없는데. 양철북의 책은 번역가 이한중 씨가 작업했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오웰의 책을 번역하신 분이니, 정확함과 꼼꼼함은 충분히 믿을 만할 것이다. 그레이 아울의 책도 감동적이다. 하여간 이렇게, 저 북쪽의 추운 땅에 대한 이야기를, 몇 년을 사이에 두고 읽은 셈이다. 괜히 신기하고 기분좋고 그렇다. 


북극 허풍담의 사냥꾼들은 외따로 떨어져 살아간다. 개썰매를 타고 며칠을 가야 하는 거리. 일 년 중 넉 달 이상, 해가 뜨지 않는 겨울, 극야. 혼자 지내다간 미칠 수밖에 없는 곳. 그래서 두세 남자가 짝을 지어 함께 지낸다. 여자는 단 한 명도 구경할 수 없다. 외지인이라고는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배의 선장과, 선원, 그리고 신참 사냥꾼들. 

시트콤 같은 일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살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사고 만 이유도, 별 생각없이 편히 볼 수 있는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자주 낄낄댔다. 그러다 마냥 웃지만은 못할 이야기에 할 말이 없어졌고, 광기에 사로잡힌 한 사냥꾼의 이야기에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이들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일 거다. 하지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일 거다. 그들 사이를 규율하는 질서나 권력은 없다. 행정 기구의 관리자 혹은 사냥 회사의 관리자는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매스 매슨), 사실상 이들의 동료나 다름없다. 이 사냥꾼들 세계의 유일한 원칙은 우애와 환대 같은 것, 사냥에 성공하지 못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동료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같은 것.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찌질하고 궁상맞은 사건들. 

이게 사실,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특히. 이토록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 실제로 나는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외로움 같은 것, 외로움으로 인한 경미한 우울과 침울함과 무기력 같은 것을, 이 사냥꾼들의 광기와 견줘 보았다. 이들의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우애를 생각해 보았다. 

모두 열 권으로 된 대작을 이때 한국에 번역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거다.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기도 하고.(요른 릴은 모국 덴마크에서 거의 국민적인 작가로 불린단다. <북극 허풍담>은, 인구 500만 명의 나라에서 25만 부가 팔렸다고. 덴마크 사람 스무 명 중 하나가 샀다는 거.) 그래서 책 뒷날개를 보면 요런 귀여운 문구가 있다. 



교정지 싸들고 간 도서관에서 1권을 단숨에 읽고 말았다. 그러고는 서점에 들러 2권과 3권을 샀다. 4권 봐야 한다. 꼭 봐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많은 권 수의 책을 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단 내주셔야 살지 말지 고민이라도 할 것 아닌가. sajangnim, 제가 꼭 메일 보냅니다. 기다리세요. 1, 2, 3권 감상문까지 담아서 보내야지.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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