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스무살을사랑하라20대여자들을위한자기격려서
카테고리 자기계발 > 자기능력계발 > 여성을위한조언
지은이 김현진 (해냄출판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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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밌게 읽은 책이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라는 타이틀은 출판사에서 붙인 것 같은데 빼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상업적인 의도가 너무 드러나는 문장이다. 이 책은 오직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 격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팍팍하게 살고 있는 오늘의 20대 모두에게 건네는 책이다. '그래, 맥주나 한 잔 하자!' 는 듯이.

아래는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들었던 구절들이다. 아직 어색한 감이 있긴 하지만 실감나는 통찰력을 간간이 발견할 수 있다.

너무 수고하지 말고 살살 하자구요 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뿐. 힘내고 있는 거, 고생하는 거 다 알아요. 그러니까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아요. 앞으로 고생할 날이 많으니까 너무 고생하지는 말고 살살 하세요.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때로는 거기서 버티고 서 있는 게 제일 힘들다는 거, 다 아니까. 힘 너무 빼지 말고 우리 잘 버텨내자는 말뿐.
이것이 지금 열심히 살고 있는 당신에게, 또는 뭔가에 세게 얻어맞아서 녹초가 되어 있는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입니다.

 당신, 정말 어려지고 싶나요? 中

…그러므로 동안에 집착하는 우리의 마음은, 실은 '어려 보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어려지고' 싶은 겁니다. 도톰한 이마에 까맣고 큰 눈, 좁은 턱을 가진 어린아이는 그 무엇에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죠. 몇백만이 넘는 실업자 시대라는데 어쩌면 좋을까, 요즘은 남자들도 똑떨어져서 나처럼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여자하고는 결혼도 안 한다는데 어쩌면 좋을까, 서른 넘으면 여자는 똥값이라고 옆집 아줌마가 그러는데 어쩌면 좋을까, 정년 보장되는 회사도 없는데 어쩌면 좋을까, 온 세상천지가 겁나는 일들 투성입니다. 이 무서운 세상에 누가 책임과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 어른이 되고 싶겠어요. 겁이 나니 당연히 도망만 치고 싶은 법이죠. …

 당신도 도넛인가요? 中

…고로케는 성공을 바란다면 도넛을 구원을 바라요. 그리고 그 구원에 다다르는 길은 구멍을 조금씩 채우는 것뿐인데 그것은 남을 이기는 것, 남 위에 올라서는 것, 남보다 더 갖는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거죠. 다만 시시하고 실없는 농담, 사소한 것에 웃는 것, 고로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일에 즐거워하는 것으로 약간이나마 그 구멍을 메워보는 것뿐입니다. 완전히 없앨 순 없다 하더라도. 그리고 지금의 나는, 도넛들의 허술함과 약함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약한 인간이야말로 인간의 약함을 진정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 세상 어딘가에는 덜 가지고 덜 이기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요. 누군가는 3등석에 앉아야 하고, 누군가는 사람 위에 사람 없다고 믿어주어야 하고, 한없이 머뭇거리는 쪽의 마음도 누군가는 알아줘야 하니까요.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구원이니까요. …

참고 : 세상에 잘 알려진 도넛들
커트 보네거트
캐럴라인 냅
에프라임 키존
필립 마롤우
일본 영화 <워터 보이즈>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
만화 '멋지다 마사루'의 후멍
찰리 브라운
라이너스
<마츠코의 혐오스러운 일생>의 마츠코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
오 헨리, 그리고 그의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캐릭터
토니 모리슨의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여자들
카렌 카펜터스
삼미슈퍼스타즈
존 레논
조지 해리슨
커트 코베인
마릴린 먼로
이문구의 소설에 나오는 많은 캐릭터
<사우스파크>의 케니

자기관리, 꼭 잘해야 하나요? 中

…지금도 사람들에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팬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은 그녀의 팬카페 같은 곳에서 열렬히 활동하거나 적극적으로 그녀의 음악을 듣기보다는 그냥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요즘 밥은 먹고 다니나' '술은 좀 줄였나' 하고 애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부인, 팬이라고 말하기도 머쓱한 극히 사소한 팬입니다. …
... 망가져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지금 지옥에 있어도 괜찮아요. 영원히 거기 있을 거 아니니까.

 세상은 당신이 외롭길 바라요 中

…내가 진짜 외로운 게 맞을까. 과연 내가 지금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은 온전히 나만의 것일까. 내가 느끼고 있는 외로움은 진실일까. … 그리고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보니, 나는 특정 상황에서 더욱 외로움을 느끼더군요.…

…몸은 자는 동안 자라고 마음은 고독한 동안 자라고, 고독한 시간이야말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회이고 쌩얼의 자신을 만날 기회이니까요. 고독해서 마음이 괴로우면 마음의 평수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외로워보지 않은 삶, 고독해 보지 않은 사람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깊이는 또 얼마나 있겠어요. … 

왜 나는 불행하면 안 되죠? 中

…그 방에서 창문을 열면 10센티미터도 안 될 것 같은 거리에 옆집 시멘트 축대가 듬직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축대를 통곡의 벽 삼아 나는 끝도 없이 징징 울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야. 왜 손이 분질러진 거야. 다리는 왜 분질러진 거야. 왜 태시는 하필 그때 그런 거야. 우리집은 왜 산산이 망한 거야. 왜 우리 부모는 능력이 없는 거야.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거야.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징징거릴 일은 하고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밤을 시퍼렇게 지새울 기세로 징징거리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죠.

왜 나한테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 일어나면 안 된다는 법은 또 어디 있어? … 세상엔 사소하든 거대하든 다양한 불행이 존재하지, 근데 난 거기 걸리면 안 된다는 게 어디 있나? 그거야말로 나만은 특별해야 한다는 건방진 생각 아닌가?

난 갑자기 울음을 딱 그쳤습니다. … 그러다가 다시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우는 건 괜찮아. 진짜 돈이 없는 것도 맞고, … 그러니까 나를 조금 불쌍하게 여기면 안 되는 건 아니야. … 그렇지만 울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 …

…더도 덜도 말고 그냥 다들 살아 계시라고. 다들 마음 아프지 말고, 일단은 살아 계시라고. 이 순간만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시간입니다, 때로는 나 자신마저도.  

아마 저자는 20대 후반일 것이다.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보수 도시 대구에서 학교를 그만 뒀댄다. 거리에서 담배피는 여자 아직도 뺨 맞는다는 곳이다. 물론 주변에 학교 자퇴한 애들이 몇 명 있긴 하지만 걔들도 절대로 쉬운 삶을 산 건 아니다.

집은 또 엄청 가난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자기가 벌었다. '재산'도 없이 말이다. 학교를 오래다니다보니 의도치 않게 이런 친구들을 알게 된다. 다들 그 사실을 숨긴다. 굳이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친구들을 학교에서 보는 것 자체가 힘들다. 정말로 '먹고 사는' 게 바쁜데 동아리 활동이 무슨 소리겠냐. 학교도 간간이 휴학하니 더 보기 힘들고.

난 기본적인 생활 필수품은 집에서 대 준다. 통신비, 집세, 난방비 같은 것. 일단 이런 걸 해결할 수 있으니 '생존할 수' 있다. 돈 없으면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되니까. 쌀이라도 있으니 밥은 안 굶는다. 그래서 아무리 돈이 없어서 절망스럽다 해도 내가 당장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 돈 빌려야 되나...' 이런 생각이나 했지.

그런데 온전히 다 자기가 벌려면 정말 힘들 것이다. 게다가 과외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대학생은 대체 어떻게... 사실 잘 상상이 안 된다. 나도 그만큼 부족할 것 없는 집에서 살아 왔으니까. 친구 중에 그런 애가 한 명 있는데 다행히 국립대를 다녀 학비 걱정은 조금 덜 하고 산다. 방학 때 알바 하루종일 해서 학비 마련하고, 학기 중에 알바해서 생활비 벌고. 그나마 대학 근로장학생 같은 건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 쎈 알바일껄? 작년 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일괄적으로 시간 당 5000원 정도로 오른 것으로 안다. 적어도 우리 학교와 서울 시내 주요 대학은 다 그렇더라. 알바 시급 몇년 째 안 오르는데... 편의점 알바에 비하면 거의 1500원 차이 나지 않나?

실제로 여성이 더 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꽤 된다. 성적인 부분과, 외모 등에 관한 부분인 아마 20대 초반 여자들이 읽으면 200%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남자애들이 읽어도 손색 없는 책이다.

주위의 여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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