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55-1)
카테고리 소설 > 러시아소설
지은이 막심 고리키 (범우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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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책 표지만 보면 열린책들의 것이 훨씬 더 박력 있는데(왼쪽 표지), 도서관에 범우사 책 밖에 없어서 걍 빌려 읽었다. 번역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범우사 책은 예전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책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무쟈게 재미 없었다...

우석훈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몇 번 이 책을 언급했다. '이 책 읽은 중학생(고등학생?)이라면 그래도 공통적인 대화 주제가 있지 않겠나...' 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 정도 책도 안 읽으면 무식해서 나랑은 대화가 안 된다'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이 좀 있던데, 사실 나도 책 읽기 전엔 그런 생각 잠깐 했는데, 책 읽고 나니 아, 그 이야기가 아니었겠다, 싶었다. 

주변에 이 책 읽은 적 있냐고 물어보니(2명) 고등학교 다닐 때 읽었다길래 잠깐 좌절했다. 헐 역시 서울대는 다르네... 뭐 그런 몹쓸 생각도 잠깐 하고.

아마 우석훈 씨는, '(내가 사는 이곳과는)다른 세계도 존재할 수 있다!' 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과 통하는 어떤 것 혹은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하지 않겠냐,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물론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세계도 존재할 수 있다!'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부터 사람은 꿈꿀 수 있게 되고, 이 세계를 벗어나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과 대화한다고 상상해보라. '경제성장이 말이에요, 그게 꼭 중요한 게 아니고요, 복지를 통한 성장도 가능하고요,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도 있고요, 레즈비언이 총리인 나라도 있고요, 무상의료 되고요 등등등'이라고 말했더니 '경제성장 안 하면 우리나라 폭삭 망하거든! 그럼 안되거든, 안되거든, 즐즐즐'이라는 대답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극 중 주인공의 변화가 이해 안 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혁명가들의 말들이 무척 유치했다. 여러 혁명가들은 미래 사회를 묘사하는데 있어 '진리', '이성', 그리고 '빛'이라는 표현을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 거의 이건 뭐, '혁명은 이데아를 향한 여정이고, 그 빛은 우리 모두를 밝은 내일로 인도케 하리라!' 그런 수준이었다. 중요한 건 이런 모습들이 당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점이다. 소설이 나온 시기가 20세기 초반이고, 고리키 자신이 혁명 운동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므로. 당시에는 이런 주장들이 오히려 매력적이고 설득력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러시아 혁명가들, 주인공 '닐로브나')의 삶이 혁명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는 점은 확실하다. 한편 나는 자꾸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들이 오버랩됐다. 저자인 고리키 자신도 말년에는 거의 유폐(혹은 감금)되다시피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로 세상을 떠났고... 김단야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숙청당했는데... 물론 숙청은 스탈린 정권의 극단적인 폭력과 전체주의의 결과였지만. 국가가 화폐의 역할을 대신한 채, 결국 성공적인 경제 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망해버린 소비에트 연방이 서글펐다. 바로 그 소비에트 연방과 혁명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청년들의 삶과 열정을 생각하면서, 셀 수 없는 아픔들이 머리 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들이 그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혁명, 그 이후의 미래 사회의 모습은 결국 러시아 청년들조차 외면하는 과거로 전락했다. 그들의 열정과 헌신은 이젠 역사학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나같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 빼고 말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이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해야 된다는 거다. 내가 천재가 아니므로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합리적인 판단 정도는 내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야 역사의 아픔(말이 거창하지 '나'의 아픔, '동지'들의 아픔)도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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