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시대에릭홉스봄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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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에릭 홉스봄 (민음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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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먹은 사람은 꼭 저렇게 마지막에 멋있는 말을 달아놓더라... 우쒸
1917년 생이니까 올해로 92살 정도 되나...? 영국 나이 세는 기준을 모르니까 대충 때려 잡아서.
책에 나오는 많은 친구들은 이미 세상을 떴다. 여동생도 그렇고. 자식들은 아직 살아 있을려나... 갑자기 궁금하다.

19세기 삼부작(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과 '극단의 시대'를 모두 읽었던 때가 몇 년 전... 선배가 억지로 읽혔던 기억이 난다. 저 비싼 책들을 사줬기에 군말없이 읽었지만 다 합쳐서 2000쪽이 넘어가는 걸 꾸역꾸역 집어 넣자니 구역질을 할 것만 같았던 기억. ㅎㅎ

내가 홉스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참 유연한 공산주의자라는 느낌 때문이다. 1956년의 헝가리 사태 이후 많은 영국 맑스주의 역사학자들이 공산당을 떠났다. 홉스봄 본인도 그 해와, 20차 소련공산당 당대회를 겪으면서 정치 일선에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적고 있다. 그럼에도 당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철새처럼 반공주의자 행세를 하며 옛 동지와 당을 비난하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쉽게 말해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낫다'는 생각 때문 아니었나 싶다. 게오르그 루카치도 그 비슷한 말을 했었다(루카치 본인은 소련에 의해 추방당하고 또 복권되는 기구한 삶을 겪지만 결코 소련을 버리지 않았다). '가장 나쁜 공산주의가 가장 착한 자본주의보다는 낫다'.

이 책 '미완의 시대'의 원 제목은 Interesting times 이다. 즉 '미완의 시대'라는 이름은 (역자가 마지막에 좋게 해설하지만ㅎ) 출판사의 상업적 속셈도 포함돼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전 4부작이 모두 '~시대'로 끝나는 책이었으니까. 극단의 시대 만 빼고는 다 한길사에서 멋드러진 표지를 달고 나왔다. 까치 출판사가 내는 책들은 다들 참 좋은데, 어째 하나같이 표지가 구리다는... -_-

'하지만 사회민주주의의 조직력이 약해지고 공산주의가 해체된 지금 위협은 이성의 적에게서 생겨나고 있다'. 실로 지금 시기에 적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번 강연회에서 우석훈 씨도 이야기한 것이지만 한국 사회가 지금과 같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아마 2MB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파시즘'이 유일할 것이다... 즉 '제국주의', 라고 말했는데 나는 경제학적으로 한국 사회의 전망을 분석하는 건 상상도 못하는 고로 그의 말이 옳다 믿으면 이거야말로 암울하다. 경제적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인종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고, 일체감을 중시하고, 소수에게 폭력적인지는, 두 눈 크게 뜨고 살다보면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만약, 1차 대전 이후의 독일과 같은, 경제적인 위기 상황이 닥치고, 포퓰리즘적이면서 인종주의적(한국 사회에선 아마도 민족주의일 듯)인 파시즘이 사회 전반에서 피어 오른다면, 나는 어쩔 것인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어느 나라 정부도 누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고, 대처는 영리를 무한정 추구하는 데만 눈이 먼 민간 기업과 애국주의라는 과히 바람직스럽지 못한 쌍두마차가 질주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영국에서 무조건 쓸어버렸다' - 책 중간에 대처 시대를 언급한 부분을 보면서 지금의 2MB 정권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리더는 실용적이고 경영적으로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굳게 버티던 시대, 대처 정권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반대 세력들이 죽을 쒀서 16년이나 정권을 연장시켰던 시대, 바지 입은 대처나 다를 바 없는 토니 블레어...

어디 포기하는 것이 우리 뿐이겠는가?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해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 나이 90 넘게 먹은, 째즈를 좋아하는, 오대륙을 평생토록 떠돌아 다닌, 아옌데도 알고 카스트로도 만났고 스탈린도 직접 봤고 하여튼 잘 나가는 좌파 역사학자가 하는 말이다.

거의 700쪽 가까이 되는 책을 일주일도 안 되어서 다 읽었다. 얼마나 재밌으면 이렇게 빨리 읽었을까? 훌륭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근데 번역이 좀 그렇다... 비문이 자주 눈에 띈다. 어려운 철학 책은 아니니까 이게 비문인지, 원래 그런건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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